상상하면 이뤄질 수 있는 것일까. 조만간 영화처럼 인간의 기억력도 과학기술을 통해 높일 수 있는 시대가 올 전망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의 신희섭 단장 연구팀이 수면 중에 나오는 뇌파를 조절하면 학습 기억력을 2배 가까이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7일 발표했다. 잠을 자는 중에만 나타나는 세 가지 종류의 뇌파가 동시에 발생해 동조(同調) 상태를 이루면, 공부한 내용의 장기 기억력이 좋아진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뇌의 해마 부위가 담당하는 장기 기억은 잠과 상관관계가 있다. 공부를 한 후 잠을 자는 동안 공부했던 것에 대한 기억이 강화되는 현상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숙면을 돕는 ‘수면방추파’라는 뇌파가 기억 형성에도 관여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해왔지만, 아직까지 수면방추파와 장기기억 간의 정확한 인과관계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기초과학연구원, 광유전학 방법 사용해 수면 뇌파 조절
생쥐의 공포 조작 실험 통한 비교 연구로 연구 결과 얻어
"사람도 머리에 장치 연결해 뇌파조정하면 기억력 높일 수 있어"
24시간이 지난 뒤, 이 세 종류의 생쥐를 두 가지 상황에 각각 배치했다. 하루 전 공포를 느꼈던 똑같은 공간에 소리 자극이 없는 상황(A)과, 전날과 전혀 다른 공간에 소리는 들리는 상황(B)이다. 상황(A)에서 공포를 느낀다면, 공간ㆍ온도ㆍ습도 등 전기충격을 받은 환경요소와 전기충격의 연관성을 기억하는 것이므로 해마에 의한 장기기억에 해당한다. 상황(B)에서 공포를 느낀다면 전기충격과 직결되는 청각적 자극과 전기충격과 연관성을 기억하는 것이므로 해마에 의존하지 않는 기억에 해당한다.
연구팀은 공포를 느낄 때 바짝 얼게 되는 생쥐의 행동을 관찰했다. 같은 공간에 소리가 없는 상황(A)에 처한 세 종류의 생쥐 중, 대뇌피질의 서파 발생 시기에 맞춰 수면방추파를 유도한 생쥐가 얼어붙는 행동을 보다 긴 시간 강하게 보이며, 다른 생쥐보다 공포에 대한 기억을 2배 가까이 잘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상황(B)에 처한 세 종류의 생쥐들은 공포기억을 떠올리는 정도의 차이가 없었다.
연구진은 세 종류 뇌파의 분포 양상을 분석한 결과, 대뇌피질의 서파가 나타나는 시기에 맞춰 수면방추파를 유도하면, 해마의 SWR파가 동원돼, 결국 이 세 가지 뇌파가 동시에 발생해 동조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렇게 세 가지 뇌파가 동시에 발생해 동조되는 비율은 수면방추파를 서파 발생 시기에 맞출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2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대뇌피질의 서파 발생에 맞춰 수면 방추파를 유도했던 생쥐가 공포에 대한 기억을 가장 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 가지 뇌파의 동조현상이 증가해 해마에서 생성된 학습정보를 대뇌피질의 전두엽으로 전달, 장기기억이 강화됐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했다.
신희섭 단장은 “지금은 생쥐의 머리에 광유전학 케이블을 삽입해 뇌파를 조정했지만, 향후 상처를 내지 않는 방법으로 인간의 뇌파를 조정할 수 있다면 인간의 학습기억 증진도 도모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뉴런 7월6일자(미국 시간)에 실렸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