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출범하고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경기도 내 외고·자사고 단계적 폐지를 선언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최근엔 동두천외고 대신 남양주시 와부읍의 와부고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이 학교는 일반고(자율형 공립고)이지만 경기도에서 ‘명문고’로 통한다. 중학교 내신 성적으로 신입생을 뽑는다. 학생 눈높이에 맞는 수준별 수업을 하고 기숙사 생활도 한다. 우수한 학생이 모여 경쟁하며 실력을 키운다는 점에서 외고·자사고와 비슷하다. 정씨네 가족이 이 학교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정씨는 “비평준화 지역의 일반고 중에선 외고·자사고처럼 우수한 학생들과 경쟁하며 좋은 여건에서 공부할 수 있는 곳이 꽤 된다. 존폐 기로에 놓여있는 외고보다 비평준화 지역 일반고에 보내는 게 아이의 미래를 위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외고·자사고 폐지 논란에 수월성 교육 대안 떠올라
중학교 성적으로 우수 학생 뽑고 명문대 많이 보내
수능 우수 100개 고교 중 비평준화 일반고 21곳
외고·자사고 “교육과정·선발제 비슷, 우리만 역차별”
"수월성 교육 수요는 인간 본성…어떻게든 풍선효과"
비평준화 일반고 중에서도 학부모의 관심이 몰리는 곳은 재학생들 명문대에 많이 보내는 학교들이다. 입시전문업체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2015학년도 기준으로 전국 고교 중에서 수능 국·영·수 2등급 이내 비율이 많은 상위 100곳을 가려 보니 21곳이 비평준화 일반고였다. 한일고·공주사대부고(충남 공주)·거창고·세마고(경기 오산)·풍산고(경북 안동)·청원고(충북 청주)·양서고(경기 양평) 등이 대표적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이들 학교는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토론·수준별 수업 등을 늘리고,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응해 동아리 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고교는 재단·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기숙사도 운영한다.
하지만 일반고보다 3배가량의 학비를 받는 자사고와 달리 비평준화 일반고는 학비가 평준화 지역 일반고와 비슷하다.
비평준화 일반고들에 따르면 새 정부 출범 이후 문의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고 황순홍 교감은 “외고·자사고 폐지 얘기가 나오면서 우리 학교에 교육과정과 입학 방법을 묻는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외고·자사고 폐지가 진전되면 관심이 더욱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비평준화 일반고에는 '혹시 자사고 혹은 외고는 아니냐'는 확인도 잇따른다. 공주 한일고의 최용희 법인국장(전 교감)도 “지난달 학교 설명회에 온 부모 중에 우리 학교를 자사고로 오해해 ‘폐지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 분도 있었다. '일반고라 영향 없다’고 설명했더니 ‘안심하고 지원할 수 있겠다’고 좋아하더라”고 전했다.
사교육업계에선 새 정부에서 외고·자사고 폐지 논의가 본격화되면 비평준화 일반고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비평준화 일반고들은 명문대 진학 실적이 높고, 교육 환경은 여느 외고·자사고 못지않아 입학 경쟁이 치열한데 외고·자사고 폐지 논란으로 경쟁이 한층 더 치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가 비평준화 일반고 쪽으로 이동하자, 자사고·외고 측에선 '폐지 논란에서 자유로운 비평준화 일반고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전국자사고연합회 오세목 회장(서울 중동고 교장)은 “진보 교육감들이 외고·자사고는 적대시하면서, 사실상 비슷한 교육과정과 선발 제도를 운영하는 비평준화 일반고는 규제 대신에 오히려 정책·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도의 A외고 교장도 “비평준화 일반고 중에선 ‘서울대 많이 보내는 학교’라며 홍보하는 곳도 많다. 외고·자사고만 ‘입시 경쟁의 주범’으로 몰리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런 시각에 대해 비평준화 지역인 경기도 화성의 한 일반고 교사는 “비평준화 일반고는 대도시와의 교육 격차를 줄이고 지역 우수 인재를 양성하는 측면이 있다. 비평준화 일반고를 자사고·외고에 같은 반열에 놓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정책본부장은 “남과 차별화된 수월성 교육을 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근본적 욕구다. 외고·자사고가 폐지되면 비평준화 지역 일반고뿐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든 풍선효과 나타날 수밖에 없다. 외고·자사고 폐지에 앞서 일반고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