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관 KDI 연구위원
트럼프가 최우선으로 삼고 있는 것은 미국의 일자리, 특히 제조업 일자리의 복원이다. 트럼프는 미국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불공정한 무역 때문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그는 중국·독일 등 무역 흑자국들이 환율 조작과 무역장벽 구축으로 미국 제품의 수출을 막고, 미국으로의 수출을 인위적으로 촉진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철강 등 불만 많지만
농업·제약·금융계는 FTA 지지
자동차는 합리적 요구 수용하고
철강은 부당 조치 시 WTO 제소
트럼프가 문제로 느끼는 것은 한·미 FTA 발효 이후 한국에 대한 미국 무역적자 규모가 거의 두 배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상품 분야에서 한국의 대미 수출은 2011년 562억 달러에서 2016년 665억 달러로 증가했고, 한국의 대미 수입은 2011년 446억 달러에서 2016년 432억 달러로 감소했다. 그 결과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011년 116.4억 달러에서 2016년 232.5억 달러로 116.1억 달러 늘었다.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미국의 ‘한·미 FTA 재협상’ 요구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미국 자동차 업계 등은 한·미 FTA에 불만을 표시하지만 농업·제약·금융계와 상공회의소 등은 지지를 보낸다. 트럼프가 선거 기간 중 언급한 한·미 FTA 폐기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되며, 한·미의 이익 균형을 흔들 수 있는 FTA의 전면적 재협상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한·미 FTA 협정문은 상품·서비스·지식재산권·투자·규범·분쟁 해결 절차 등을 망라한 포괄적인 협정문이다. 또 양국 무역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여러 대화의 장을 마련해 놓았다. 트럼프가 정상회담에서 언급한 것은 한국의 자동차 관련 비관세 장벽의 개선 가능성, 그리고 철강에 대해선 한국의 덤핑 수출 방지다. 이런 문제는 한·미 FTA 협정문의 개정 없이 다룰 수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했느냐 여부에 대한 소모적 논쟁은 자제하고, 미국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무역정책은 그 자체가 독립적 목표를 가지고 있는 정책이 아니라 정부의 경제외교 정책의 일부분이므로, 무역정책의 목표는 상위 정부 정책의 목표에 맞추어 설계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을 정책 기조로 하고 있다. 따라서 무역정책도 이런 정책 기조에 따라 설정돼야 할 것이다.
국민의 소득 증대를 위해 시장 경쟁 강화를 통한 독과점 이윤 제거와 이를 통한 가격 하락은 필요한 정책이다. FTA 등 무역 개방 정책은 국내 시장 경쟁 강화와 동시에 국내 생산 감소의 염려를 가져오는 양날의 칼이다. 국내 기업이 어느 정도 자생력이 있다면 무역 개방을 통해 시장 경쟁을 강화하여 독과점 이윤을 낮추는 것이 국민의 소득 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 국내 기업의 자생력이 현재는 약하지만 일시적 정책 지원으로 개선될 것이 기대되는 경우 무역 개방 속도를 조절해 국내 생산 감소를 방지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국민 소득 증대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자동차와 철강 분야의 경우 국내 업체가 세계적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자동차 분야의 경우 미국의 합리적 요구는 수용하여 시장 경쟁을 높이는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철강 분야는 미국과 합리적으로 대화하되 미국의 부당한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해 대응해야 할 것이다.
송영관 KDI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