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의회 선거 녹색 돌풍
이집트 이민 중 4차 중동전쟁 경험
“이상주의 도움 안 돼” 깨달아
뉴스 앵커 거쳐 92년 정치 입문
철새 정치인 비판 속 핵무장 주장
그의 아버지는 1969년 중의원 선거에서 효고(兵庫) 2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마했다. 당시 사회당의 신인 도이 다카코(土井 多賀子)에게 패배했던 그 곳에서 1993년, 고이케는 중의원으로 당선됐다. 24년 전 아버지의 패배를 딸이 설욕한 것이다. 당시 고이케는 "도쿄 주변 지역구였다면 쉽게 이겼겠지만, 일부러 효고 2구를 선택했다. 아버지의 분함을 잊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낙선 이후 가계는 기울었다. 고이케 가족은 이집트 카이로로 이민을 떠난다. 카이로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고이케는 이 곳에서 인생의 전기가 되는 경험을 한다. 카이로로 이주한지 얼마 안돼 4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것. 총탄이 날아다니는 생생한 전쟁의 현장을 목격한 그는 “이상주의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세계가 얼마나 기만으로 가득한 지, 현실적인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 지 등을 배운 당시의 경험이 현재의 도지사 업무와 도민퍼스트의 자세에도 그대로 연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이케의 현실감각은 당적을 5번 바꾼데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92년 일본신당으로 정치에 입문한 고이케는 신진당, 자유당, 보수당, 자민당을 거쳤다.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도민퍼스트회'가 6번째 정당이다.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 속에 "생존을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현실주의에 입각한 고이케의 생각은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고이케는 일본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03년 3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군사, 외교적인 판단에 따라 핵무장 선택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놓고선 최근엔 "전술적 발언일 뿐"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국제정치는 냉철하고 사악하다. 국가를 유지한다는 건 '흑이냐 백이냐'라고 간단하게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
2005년에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했고, 2007년 미국 의회가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지 못하도록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공개 로비를 펼치기도 했다. 방송에 출연해 "고노담화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공공연하게 부정해왔다.
고이케는 현재 독신이다. 20살 때 카이로대학에서 만난 일본인과 결혼했지만 1년만에 이혼한 뒤 혼자 살고 있다. 31살 때 터키 청년과 "터키탕이라는 이름을 쓰지 말아달라"고 후생성에 진정을 낸 특이한 이력도 있다.
윤설영 기자 snow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