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애프터눈 티가 궁금해? 그럼 여기 어때!

중앙일보

입력 2017.06.29 00:01

수정 2017.06.2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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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여행에서 꼭 들러야 하는 장소로 꼽히는 곳이 있다. 페닌슐라호텔이다. 묵는 장소로도 좋지만 다들 1928년 이 호텔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이어지고 있는 애프터눈 티를 경험하러 간다. 

홍콩 페닌슐라 호텔 애프터눈 티. [사진 페닌슐라 호텔]

페닌슐라호텔 애프터눈 티는 1층 로비 라운지 ‘더 로비’에서 즐길 수 있다. 매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제공하는데 평일·주말 상관없이 애프터눈 티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늘 줄이 길게 늘어선다. 대기 시간이 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오픈 30분 전인 오후 1시30분에 도착했지만 이미 80~90개쯤 되는 테이블이 전부 차 있는 것은 물론이요, 입장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선 사람이 20여 명이 넘었다. 
 
예약은 투숙객만 가능 
여유 있게 다과와 차를 즐기는 까닭에 자리는 쉽게 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기 줄은 점점 더 길어져 오후 3~4시면 복도 끝 아케이드까지 대기자로 꽉 들어차는 일이 빈번하다. 오픈 시간 이후라면 최소 1시간은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예약을 미리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투숙객 이외에는 예약을 따로 받지 않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자리에 앉고 보니 “기다리지 않고 애프터눈 티 즐기기 위해 페닌슐라 호텔에 묵는다”는 이야기에 수긍이 간다. 

홍콩 페닌슐라호텔 1층 '더 로비'. 애프터눈 티가 시작되는 오후 2시. 이미 자리는 만석이다. 윤경희 기자

페닌슐라호텔 1층 '더 로비' 입구에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애프터눈 티를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윤경희 기자

안나 마리아 공작부인에서 유래
애프터눈 티는 원래 영국 상류층 문화다. 유래는 19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차 이야기』의 정은희 작가에 따르면 베드포드 가문 7대 공작부인이었던 안나 마리아(1788~1861)가 점심과 저녁식사 사이에 하녀에게 다기 세트와 빵, 버터를 쟁반에 담아 방으로 가져오게 한 데서 애프터눈 티가 시작됐다고 한다. 안나 마리아는 작은 샌드위치와 스콘, 비스킷 등을 곁들여 홍차를 마셨고 저택을 방문한 손님들과 함께 이를 즐겼다. 오후 티타임은 곧 상류사회 부인들 사이에서 유행됐고 이후 영국인의 사교 행사로 뿌리 내렸다. 홍콩에 애프터눈 티 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영국 식민지라는 배경 때문이다. 

1928년부터 이어온 홍콩 페닌슐라 호텔 애프터눈 티
'티파니' 은식기 사용하는 즐거움도

오이 넣은 샌드위치 필수
격식을 중시하는 상류층 문화이다보니 먹는 법과 구성하는 다과에도 정해진 규칙이 있다. 다과는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빵과 케이크, 초콜릿 같은 디저트류로 구성되는데 스콘과 얇게 썬 오이를 넣은 작은 샌드위치를 넣는 게 전통이다. 애프터눈 티라고 하면 떠오르는 ‘3단 트레이’에 담긴 다과는 보통 가장 밑에서부터 윗 접시 순으로 먹으면 된다. 

3단 트레이의 중간 접시. 고전적인 오이 샌드위치와 연어 샌드위치, 고기를 으깨 초코빵 사이에 넣은 샌드위치, 채식주의자를 위한 시금치 타르트가 나왔다.윤경희 기자

페닌슐라 애프터눈 티 3단 트레이의 맨 윗접시. 달달한 크림, 초콜릿을 기본으로 한 작은 케이크 4종류가 마련된다. 윤경희 기자

페닌슐라호텔은 좀 달랐다. 중간 접시의 짭짤한 4종류의 샌드위치류를 먹고 맨 아래칸 스콘, 그리고 맨 위 디저트류 순을 권했다. 서빙하는 직원에게 다과 메뉴에 대해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됐다. 금가루를 뿌린 연어 샌드위치나 상큼한 오이 샌드위치 등 공들여 만든 샌드위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스콘으로 배를 채우기 전에 먼저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그냥 권할 뿐 취향에 따라 마음대로 먹으면 된다"고 했다. 단 복장에는 최소한의 격식을 요구했다. 슬리퍼나 해변용 샌들, 플라스틱으로 만든 신발을 신을 수 없다. 남성은 소매 없는 셔츠를 입으면 입장이 안 된다. 

4월의 홍콩 페닌슐라 애프터눈 티 3단 트레이. 스콘을 제외한 메뉴는 2~3개월 단위로 바뀐다. 윤경희 기자

 
1928년과 똑같은 스콘 

트레이 맨 밑을 89년째 차지하고 있는 스콘. 윤경희 기자

샌드위치와 스콘·디저트라는 큰 틀은 같지만 구체적인 메뉴는 매 시즌별로 조금씩 바뀐다. 그 계절에 맞는 과일이나 재료로 샌드위치와 디저트를 낸다. 스콘만은 1928년 문을 연 이후 쭉 같은 레시피로 만들어 오고 있단다. 
 
식기로 먼저 눈호강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티. [사진 페닌슐라 호텔]

애프터눈 티의 또 다른 주인공인 차로는 페닌슐라 호텔에서 직접 만든 홍차부터 망고·복숭아 등 과일향이 들어간 가향차, 유기농 허브차 등 20여 종이 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차는 다과가 나오기 전에 먼저 내주는데 여기에 사용한 티포트, 거름망, 스푼 등 식기가 또 볼거리다. 전부 은으로 만든 것들로 유명 주얼리 브랜드인 ‘티파니 앤 코’의 제품이다. 

티파니 은식기로 홍차를 우려냈다. 윤경희 기자

 
문화 즐기는 장소
애프터눈 티 가격은 2인 기준으로 658 홍콩달러(원화 약 9만5000원)다. 인원이 추가되면 1인 세트(368홍콩달러)를 추가로 시키거나 4명이라면 2인 세트 두 개를 주문하면 된다. 디저트 3단 트레이가 부담스럽다면 애프터눈 티 세트와 계란·베이컨·빵 등으로 구성된 ‘더 로비 클럽’이나 ‘핫도그’ ‘스프링롤’ 등 다른 메뉴를 시켜 늦은 브런치를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영국식 정통 애프터눈 티를 선보이는 페닌슐라 호텔 더 로비. [사진 페닌슐라 호텔]

페닌슐라의 애프터눈 티를 '디저트 카페'로 생각한다면 실망할 지도 모른다. 서울에도 이미 독특하고 개성있는 디저트를 선보이는 디저트 집이 즐비하니 말이다. 이곳은 '디저트를 먹는 곳'이라기보다 애프터눈 티 '문화'를 즐기는 곳이라고 접근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쌉싸름한 차 맛을 좋게 만드는 달달한 디저트와 화려한 티파니의 식기,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등 이 모든 것을 배경으로 함께 하는 사람과 여유로이 보내는 시간, 그게 바로 페닌슐라 애프터눈 티의 진수다. 
홍콩=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