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턱 쏠게" 말했다면 어디까지 내야 할까?

중앙일보

입력 2017.06.2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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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오늘은 내가 한턱 쏜다."
 
기분 좋은 일이 생겼거나 기념하고 싶은 날, 호기롭게 던진 한마디 때문에 다음 날 물밀듯 밀려오는 후회와 함께 결제된 카드 내역을 빤히 바라본 적 있으신가요?  
 
생각보다 많이 나왔으니 나눠내자고 하기엔 뱉어놓은 말이 있어 자존심 상하고, 그냥 감당하기엔 어떻게든 말을 주워 담고 싶어지는데요.  
 
이럴 때 '한턱'의 기준이 되어줄 '솔로몬의 판결'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때는 20년을 거슬러 올라간 1997년 7월. 서울지법 남부지원 박해식 판사는 술 한턱을 내겠다고 해 함께 술을 마신 뒤 술값 90만원이 나오자 상대에게 나눠내자고 한 조정신청 사건에서 '한턱'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바로 '본인이 처음에 스스로 주문한 술과 안주 가격'이라는 것인데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A씨는 B씨와의 다툼 끝에 "화해주로 술 한턱을 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상했던 30만원을 훌쩍 넘는 90만원의 술값이 나오자 "예상했던 만큼만 부담해야 한다"며 B씨와 술값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B씨는 "한턱 내겠다고 했으면 술값 모두를 내야 한다"고 맞섰죠.  
 
박 판사는 A씨와 B씨의 친지, 방청객의 의견을 모아 고심 끝에 "한턱을 내겠다고 한 사람은 처음 주문한 술과 안줏값 20만원만 부담하고, 당초 예상할 수 없었던 나머지 술값 70만원은 두 사람이 35만원씩 나누어 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판례에 따르면 앞으로 한턱을 내야할 때는 처음에 조금만 시키고, 얻어먹을 때는 처음부터 많이 시키는 게 이익이겠네요.
 

경향신문 1997년 7월 2일자 기사.

온라인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