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MBC PD로 입사한 고인은 ‘뮤직 다이알’ 연출을 담당하다 내부 사정으로 진행을 맡았고 청취자들의 반응이 좋아 정식 DJ로 데뷔하게 됐다. 본래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던 그는 현재 서울 코리아나호텔 자리에 있던 ‘아카데미 극장’ 음악감상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방송사 눈에 띄어 발탁된 케이스였다. 당시 종로의 ‘세시봉’이나 ‘디세네’, 명동 ‘꽃다방’ 등과 함께 팝음악 유행에 앞장서던 곳이었다.
1세대 라디오 DJ 박원웅 별세
PD·DJ·작가·엔지니어 1인 4역
70년대 ‘별이 빛나는 밤에’ 등
이종환과 함께 팝 전성기 이끌어
“유행가보다 새 음악 소개 앞장”
고인은 64년 동아방송 ‘탑툰쇼’로 한국 최초 DJ 활동을 시작한 최동욱(81)과 MBC ‘별이 빛나는 밤에’로 인기를 얻은 고(故) 이종환 등과 함께 국내 FM 팝 음악프로그램 전성기를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나지막하고 안정적인 목소리로 큰 사랑을 받았던 그가 생전에 최고의 라이벌로 꼽은 이는 TBC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황인용(77)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70년대 가수 쪽에 오빠부대의 원조였던 남진과 나훈아가 있었다면 라디오 방송에선 우리였다”고 밝혔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FM 팝스’를 진행하는 한동준 등 많은 DJ들에게 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이자 토양을 마련해준 분”이라며 “유행가 위주의 선곡보다는 새로운 음악을 발굴해서 소개하는 훌륭한 전달자였다”고 회고했다.
실제 팝 음악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일본 잡지나 빌보드 등을 구해 공부를 많이 했던 학구파였던 고인은 여러 인터뷰들을 통해 “우리가 듣고 배울 만한 서정적인 곡들을 우선적으로 선곡했다”고 밝혔다. “요즘은 음악이 주류라기보다는 웃음을 유발하는 입담 위주여서 안타깝다”며 전문 DJ에서 탤런트·개그맨 등으로 진행자가 바뀐 풍토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라디오를 두고 “고마운 친구이자 동반자”로 표현했던 고인은 93년 ‘골든디스크’를 끝으로 22년 라디오 방송 생활을 마감했다.
남다른 기획력과 안목으로 걸출한 후배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신인들의 등용문이었던 ‘DJ 콘테스트’와 MBC ‘강변가요제’도 그의 작품이었다. 고인은 “1회 강변가요제를 통해 가수 이선희와 데뷔곡 ‘J에게’가 탄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쉘부르’ 음악감상실에서 진행하던 ‘허참쇼’를 보러 갔다가 허참을 ‘청춘은 즐거워’ DJ로 발굴한 일화도 유명하다.
2010년부터는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를 결성해 후배들에게 더 큰 힘을 실어줬다. 최동욱 초대 회장에 이어 3대 회장을 맡아 대한민국 DJ 50주년 기념행사와 내한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창원·지현·지혜씨 등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역삼동성당 장례식장 요셉관 1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미사와 발인은 27일. 경기 천주교용인공원묘원에 안장된다. 02-553-0820.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