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그날 애들은 애들대로 나는 나대로 깔깔깔 웃었다. 7·9년차 워킹맘, 예비 워킹맘인 임신부, 미혼여성 넷이 둘러앉은 식탁에선 우리의 고민도 짬짬이 쏟아져 나왔다. 친정엄마(또는 시어머니)에게 의존하는 육아의 고충, 커리어에 대한 고민, 육아 방식, 그리고 셀프 인테리어 방법까지. 아이들이 수시로 끼어들어도 전혀 눈치 보이지 않는 식탁은 참 편안했다. 오후 10시가 넘도록 ‘집에 안 가겠다’고 버티는 애들을 겨우 설득해 나오며 생각했다. ‘새 친구들이 생겼네’. 아이도 한마디 보탰다. “엄마, 다른 엄마 친구네 집도 가 보고 싶어.” 그 마음에 엄마들의 즐거운 표정이 보였기를 바랐다.
사실 출산 이후 수년간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취재를 위한 약속이나 필참 회식, 야근만으로도 저녁은 빠듯했다. 사적인 약속은 사치였다. 대부분의 워킹맘이 그렇게 인간관계를 강제 구조조정당하는 기분으로 수년을 버틴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따로 만날 기회도 줄었다. 주변에 남아 있는 친구는 직장 동료들과 남편뿐이더라는 경우도 많다.
문득 이 빠듯한 삶이 외롭다고 느껴질 때쯤, 내가 누구에게 말 걸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가장 마음을 많이 터놓는 사람들, 주변의 워킹맘들이었다. 심란한 마음을 공감해 주는 대화는 관계의 벽을 쉽게 허물어뜨렸다. ‘일하는 나’와 ‘내 아이의 엄마’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과 같이 분노하고 웃고 토닥였다. 게다가 ‘워킹대디’로서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 당당한 ‘남자사람’은 보물같은 친구들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다같이 식탁에 둘러앉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이런 엄마·아빠 친구들과의 저녁이 더 흔해지길 바란다. 야근과 술자리 못지않게 우리에겐 이런 저녁이 진짜 필요하다. 나도, 아이들도 외롭지 않기 위해.
박수련 이노베이션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