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전북 완주군 이서면의 한 천막 농성장. '2년 차 농부'인 박정균(52) 천도교한울연대 전북지부장은 "농사는 생명과 환경을 다루는 일인데 GMO는 이것을 위협하는 것이어서 반대 운동에 동참하게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24년간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다 지난해 2월 전북 진안군으로 귀농했다.
전북녹색연합 등 110개 단체, 62일째 GMO 반대 농성
"GM작물 유해하다"며 정부 주도 개발 중단 요구
"생태계 교란, 백혈병·자폐증·불임 유발" 주장
농민들 "소비자 불신 커져 타격 클 것" 우려
농진청 "국제 기준 따라 엄격히 실험, 안전하다" 반박
외려 "국가 경쟁력 차원서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
농진청, 식물·가축·곤충 등 GMO 146종 연구
"90% 이상 유전자 기능 연구용, 상업화 무관"
게다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GM벼 등을 노지(지붕 등으로 가리지 않은 땅)에서 재배하면 일반 농작물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도 농민들은 우려했다.
여성만(59) 전 정농마을 이장은 "기본적으로 GM작물은 친환경 농산물이 될 수 없다"며 "'전북=GMO 본산지'라는 소문이 퍼지면 지역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커져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씨는 마을에 GM작물 재배지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해 이슈화한 인물이다. 그는 "GM벼 재배지 바깥에 두른 철조망도 주민들 지적이 나오자 지난해 8월 조치를 한 것"이라며 "'눈 가리고 아옹' 식으로 안전은 뒷전인데 누가 농진청 말을 믿겠느냐"고 덧붙였다.
이들은 "GM작물은 유해하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GM작물 개발·연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이 연구를 이끄는 농진청 GM작물개발사업단을 해체하라는 게 핵심 주장이다.
이들은 "제초제에 죽지 않고 해충에 강한 GM작물들이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국토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GM작물을 먹으면 온갖 질병에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12년 프랑스 캉대학의 셀라리니 교수 연구팀은 2년간 생쥐 실험을 거쳐 GM옥수수가 정상 세포를 종양덩어리로 바꾸고 장기 손상과 수명 단축, 불임·알레르기 등을 일으킨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농진청은 "당시 유럽식품안전청(EFSA) 과학자문단의 검토 결과 해당 논문은 실험 과정과 결과에 부족한 부분이 많고 과학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GMO 반대론자들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한승우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은 "GM작물을 민간이나 학계에선 연구할 수 있지만 안전성이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무분별한 개발을 통제하고 검증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안전하다'고 맹신하고 상용화를 주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류태훈 농진청 연구운영과 LMO 관리팀장은 "농진청이 하는 GM작물 실험의 90% 이상은 위해성 평가와 관계 없는 연구용으로 유전자 삽입이 잘 됐는지, 특성이 잘 발현되는지 등을 검정하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GMO의 개발 절차는 유전자 발굴, 기능 검정, 계통 육성, 위해성 평가, 위해성 심사, 품종 등록 및 상업화 순서로 진행되는데 현재 농진청에서 연구·개발 중인 GMO 146종 가운데 위해성 평가를 받는 품목은 동물(형광누에)까지 합쳐 3종뿐이라는 것이다. 작물만 따지면 레스베라트롤 벼와 가뭄저항성 벼 등 2종이다.
농진청은 GMO의 안전성에 대한 근거로 국내외 과학계의 발표를 내세운다. 미국 과학한림원(NAS)은 지난해 5월 "지금까지 연구된 900여 편의 논문을 분석한 결과 현재 유통되는 GM농산물은 인체와 환경에 대한 위해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노벨상 수상자 108명도 같은 해 6월 "지금까지 GMO 소비가 인간이나 동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는 한 번도 확인되지 않았다"며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에 GMO 반대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한국육종학회 등 국내 생명공학 5개 학회와 식품 관련 9개 학회 등도 "농업생명공학 연구 개발은 기후변화 대응과 우리 농업의 고부가 가치 및 첨단 산업화에 필요한 핵심 대안으로 위축·중단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실제 지난해 전국에 있는 농진청 소속 기관과 대학 등의 GM작물 격리 포장 주변 식생(식물 집단)에 대해 환경부와 농식품부 등이 환경 영향 조사를 한 결과 GM종자 유출에 따른 자생 개체와 오염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농진청은 외려 "유전자변형 기술은 최상위 육종기술로서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GM작물 1종을 개발하는 데 최소 10년이 걸리고 1000억원 이상이 드는 현실 속에서 다국적 기업의 GM작물 원천 특허 독점에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다.
농진청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GM작물 격리 포장(시험 재배지)은 지난해 기준 3만9410㎡다. 이 가운데 농진청 본사가 있는 전주·완주혁신도시(3만5000㎡)가 전체 90%를 차지한다. 올해 승인된 면적은 6100㎡이고 품목은 벼와 콩·사과·잔디·밀·국화 등 9개다.
조남준 농진청 연구운영과장은 "지난해까지 수원·밀양 등 전국에서 진행하던 GM작물 실험을 종료하고 폐쇄 조치 중"이라며 "전주·완주혁신도시 안에 안전관리시설을 갖췄기 때문에 여기에서 집중해 실험하는 것으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정황근 농촌진흥청장은 "기후 변화 추이를 보면 10년, 20년 후에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GM작물을 지금 심지는 않더라도 주요 품종에 대해선 그 기술을 갖고 있어야 나중에 경쟁국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민적 공감대 없이는 일반 농경지에서 GM작물의 상용화·상업화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