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를 날려라, 흥미진진 태권 ‘얍’

중앙일보

입력 2017.06.22 01:00

수정 2017.06.2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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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시원한 발차기로 태권도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드릴게요.”
 
‘미스터 태권도’와 ‘태권도 여신’이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을 앞두고 각오를 밝혔다. 세계 태권도의 남녀 간판 이대훈(24·한국가스공사)과 오혜리(29·춘천시청)를 21일 전북 무주 태권도원 인근 대표팀 숙소에서 만났다. 24일 무주에서 개막하는 2017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는 세계태권도연맹(WTF) 가맹 208개국 중 183개국 971명의 선수와 임원 등 총 1768명이 참가한다. 역대 최대 규모다. 사상 최초로 난민 선수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세계 간판 오혜리·이대훈의 각오
올림픽 정식 종목서 살아남기
일본 가라테와 장외 경쟁 치열
재미없다는 편견 깰 화끈한 공격
183개국 참가 무주 세계선수권서
달라진 태권도 확실히 보여줄 것

이대훈에게 이번 대회는 ‘리우 설욕전’이다. 지난해 리우올림픽에서 이대훈은 남자 -68kg급 세계랭킹 1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동메달에 그쳤다. 8강에서 ‘다크호스’ 아흐마드 아부가우시(21·요르단)에 8-11로 져 패자전으로 밀려났다. 앞서 세계선수권과 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을 모두 제패했던 그는 그랜드슬램 달성의 ‘마지막 퍼즐’인 올림픽 금메달 도전을 2020년 도쿄올림픽으로 미뤘다.
 

한국 태권도의 남녀 간판 이대훈(오른쪽)과 오혜리. 24일 전북 무주에서 개막하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두 선수는 “해외의 강자들이 많아서 방심할 수 없다. 태권도가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라는 것을 실력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무주=프리랜서 오종찬]

아쉬움 가득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이대훈은 아부가우시의 손을 번쩍 들어 승자에 대한 예의를 표시했다. 팬들은 “태권도 정신을 제대로 구현했다”는 칭찬과 함께 ‘미스터 태권도’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이대훈은 “앞발(상대 공격을 손쉽게 방어하기 위해 한 발을 들고 경기하는 것)을 썼다면 한결 수월했을 것이다. 어쩌면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지도 모른다”면서 “하지만 당시 내겐 ‘올림픽 태권도는 재미 없다’는 편견을 깨는 게 더 중요했다. 그래서 매 경기 화끈한 공격 기술로 승부했다. 금메달을 놓쳤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이대훈은 아부가우시와 1년 만에 다시 만난다. 그는 “이젠 태권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며 “올림픽 무대에서 (아부가우시에게) 졌던 빚은 확실히 갚겠다. 더 강하고 빠른 공격으로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태권도 여신’으로 불리는 오혜리는 마음 속으로 ‘어게인(again) 2016’을 되뇌고 있다. 리우올림픽 금메달(여자 -67kg급)에 이어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 자랑스런 태권도인상 수상 등 경사가 이어진 지난해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힘든 시기를 버텼다. 오혜리는 “국제 대회에 나설 때마다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그게 스트레스가 되고, 경기력에 악영향을 끼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마음 속으론 ‘승부를 즐기겠다’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면서 “이제 마음을 비우는 법을 배웠다. 경기에 집중하면서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대회를 앞두고 부상을 당해 훈련을 많이 하지 못했지만 안방에서 지고 싶진 않다”고 덧붙였다.


2020년 도쿄올림픽은 두 선수에게도 중요한 무대다. 금메달 못지않게 ‘가라테’와의 장외 경쟁에서도 이겨야 한다. 오혜리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경기 규칙이 많이 바뀌었다. 몸통 발차기 공격의 배점이 1점에서 2점으로 올랐고, 방어적인 플레이로 일관하는 선수는 경고 없이 감점을 당한다”면서 “이런 변화는 가라테와의 경쟁에 직면한 태권도가 스스로 변화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결국 우리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대훈은 “궁극적으로 태권도와 가라테 중 한 종목만 올림픽 무대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태권도가 올림픽 무대에서 공들여 쌓은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체계적인 방어 전략이 필요하다. 첫 단추는 공격적인 경기를 통해 ‘태권도가 재미있는 스포츠’라는 인식을 쌓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가라테는 일본 국민들과 기업들이 한 마음으로 돕는다고 들었다. 우리 국민들이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믿고 성원해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두 선수는 지난해와 올해 초 나란히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대훈은 지난해부터 연세대 스포츠레저 석사 과정을 밟고 있고, 오혜리는 올해 초 차의과대학에서 스포츠의학 박사 과정 도전을 시작했다. 이대훈은 태권도가 스포츠 상품으로, 글로벌 문화로 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방안을 연구 중이다. 오혜리는 격렬한 동작이 많은 태권도 선수들이 경기 중에 효율적으로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탐구할 예정이다.
 
오혜리는 …
생년월일 : 1988년 4월 30일
체격 :키 1m80㎝, 몸무게 69㎏
소속팀 : 춘천시청
출신교 : 노암초-관동중-강원체고-한국체대
특징 : 왼발 머리차기·내려찍기
주요경력 : 2011 세계선수권 은
2015 세계선수권 금
2016 리우올림픽 금
이대훈은 …
생년월일 : 1992년 2월 5일
체격 : 키 1m82㎝, 몸무게 68㎏
소속팀 : 한국가스공사
출신교 : 중계초-한성중-한성고-용인대
특징 : 양발잡이
주요경력 : 2011·2013 세계선수권 금
2010·2014 아시안게임 금
2012·2014 아시아선수권 금
2012 런던올림픽 은
2016 리우올림픽 동
세계태권도연맹 올해의 선수(2014·2015)
 
무주=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