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도 슈즈 라인은 주로 이탈리아에서 만든다. 베네치아 인근 작은 마을에 터잡은 슈즈 공방 ‘피에쏘 아르티코(Fiesso d’Artico)’가 신발을 맡고 있다. 이 지역은 13세기부터 신발을 만들어왔으며, 대대로 전수된 신발 공예로 유명하다. 루이비통도 대대로 내려오는 기술과 노하우(savoir-faire)를 물려받은 장인들이 자사의 명품 구두를 만든다고 홍보한다.
루이비통, 루마니아 공장에서 거의 완성한 구두
이탈리아에서 밑창만 붙여 '메이드 인 이태리'
가디언 "제조 비용 낮추고 수익 올리기 위한 꼼수"
아르마니ㆍ프라다 등 명품도 중국ㆍ터키ㆍ베트남 제조
공장 홍보 담당자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고위직은 프랑스인이 맡고 있으며, 원부자재도 모두 프랑스에서 수입해 온다”며 “조립을 마친 반제품을 프랑스나 이탈리아로 수출하면 그곳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기 때문에 유럽연합(EU)법에 따라 ‘메이드 인 프랑스’ ‘메이드 인 이탈리아’ 라벨을 붙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유럽의회는 2014년 ‘메이드 인 OOO’ 라벨 부착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제품 생산이 여러 나라에 걸쳐 진행되는 ‘생산 과정의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원산지 표시 논란이 불거지자 기준을 정했다. 2개국 이상에서 상품이 생산된 경우 공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실체적 변형이 이뤄지고 ▶경제적 정당성이 확인되면 해당 국가를 원산지로 표기해야 한다. 이에 따라 신발 제조 공정의 마지막 단계로 이탈리아에서 밑창을 붙이면 합법적으로 ‘메이드 인 이탈리아’로 인정받게 된다. 가디언은 “제조 비용을 낮춰 수익을 늘리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했다.
루이비통이 루마니아로 눈을 돌린 것은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LVMH그룹은 2002년 이곳에 첫 공장을 세웠다. 생산량이 점점 늘어나자 2009년 인근에 제2공장을 설립해 핸드백과 트렁크에 사용하는 부속품을 만든다. 루마니아는 유럽에서 인건비가 가장 싼 곳 중 하나다. 공장 홍보담당자는 “공장 근로자 734명은 루마니아의 일반 의류 공장에서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이 받는 평균 임금을 받는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노동자 인권 단체에 따르면 루마니아 의류 노동자의 한 달 평균 임금은 133유로(약 17만원)다. 루마니아의 의류 공장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에 “유럽의 스웨트숍(sweatshopㆍ착취 노동이 이뤄지는 곳)”으로 불린다. 방글라데시ㆍ스리랑카 등 아시아의 스웨트숍에 빗댄 표현이다.
이와 비교하면 루이비통 공장은 노동 환경이 좋은 편이다. 작업장은 밝고 깨끗하며, 직원들은 앉아서 일한다. 회사 관계자는 “루마니아에서는 이런 작업 환경을 근로자들이 원한다”며 “주말 휴무를 지키고,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며, 무독성 화학물질을 사용한다”고 소개했다. 현지 노동 감시당국도 이 공장에 대한 민원이나 신고가 접수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제조 비용이 싼 곳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추세는 2000년대 이후 급격히 늘어났다. 버버리ㆍ아르마니ㆍ프라다ㆍ미우미우ㆍ발리ㆍ돌체 앤 가바나 등은 일부 제품을 중국에서 만든다. 프라다는 가방ㆍ의류ㆍ신발 등 상품의 20%를 중국에서 제조하고, 베트남ㆍ터키ㆍ루마니아에도 생산 기지를 갖췄다. 프라다의 수석 디자이너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제조 기술이 좋기 때문에 머잖아 누구나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유럽 명품 브랜드들이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제품을 정교하게 만들면서 명성을 쌓았다는 점이다. 인건비가 비싼 유럽에서 노하우를 갖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싼 가격이 어느 정도 정당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생산 기지가 저개발국으로 옮겨가면서 비싼 가격에 대한 정당성이 약화되고 있다. 루이비통 신발 가격은 80만원대에서 시작해 300만원대까지 간다. 한 럭셔리 브랜드 소비자는 “대대로 전수받은 손 기술과 장인정신으로 만든 제품이라는 믿음 때문에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것인데, 저임금 근로자가 단기 훈련을 받고 만든 신발을 프랑스산, 이탈리아산으로 포장해 판다면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