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 문제 한 번 풀어보자.”
김성회 경복고 수학교사가 스크린에 모의고사 수학 문제를 띄웠다. 둥그렇게 모여 앉은 학생들이 일제히 펜을 들고 연습장에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혼자 힘으로 해결이 안 되는 어려운 문제는 친구나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2학년 임지우 군이 “‘근의 공식’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고 하자 옆자리에 앉은 강준묵 군이 “그렇게 풀면 함정에 빠진다”며 풀이방법을 설명해 줬다. 구본준 군은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있다”며 손을 들고 교사에게 질문했다.
지난해 1학년 대상으로 ‘자기주도학습탐험대’ 첫 도입
주4회 이상 자율학습에 ‘사교육 거부’ 서약해야 참가
화 ·목은 주요과목 수업, 월 ·수 ·금은 자율학습
플래너 작성해 계획 세우고, 학습법 상담도 실시
지난해 참가자의 71.4%가 국 ·영 ·수 성적 향상
수학 20점 넘은 적 없는 수포자, 전교 39등 ‘껑충’
전문가, "특목고,자사고 폐지한다고 일반고 발전안돼
일반고 스스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등 노력 있어야"
사실 국내에서는 사교육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공부하는 학생이 흔치 않다. 만 15세 한국 학생들이 받는 사교육 시간은 일주일당 평균 3.6시간(2012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다. 회원국 평균(0.6시간)의 6배에 이른다. 지난 3월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생 중 67.8%가 사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경복고의 자기주도학습탐험대에 참여한 학생들은 “혼자 공부한 덕분에 학습에 흥미가 생기고 성적이 올랐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참가자의 71.4%가 국·영·수 성적이 상승했다. 이들의 1학기 중간고사 평균은 72.9점이었지만 기말고사에선 77.4점으로 4.5점 올랐다. 평균이 20점이나 상승한 학생도 있다. 전체 학생의 과목별 성적 향상도도 뚜렷하다. 국어는 83점에서 88점, 수학은 65점에서 68점, 영어는 75점에서 76점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고교에 올라와 자기주도학습탐험대에 참여하면서 학원을 그만뒀고, 혼자 계획을 세워 공부하고 지식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중학교 때까지 3등급 대에 머물렀던 성적도 1~2등급으로 올랐다. 강군은 “혼자 힘으로 공부하면서 탐구력이나 문제해결력이 향상됐다”고 말했다.
2학년 박세호군은 중학교 때까지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였다. 3년 동안 그의 성적은 수학 20점대를 벗어난 적이 없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수학 방정식의 기본인 ‘근의 공식’도 이해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대포자(대학 진학을 포기한 사람)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자기주도학습탐험대에 참여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수학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익혀 나갔고, 난생 처음 수학 문제집을 끝까지 풀어냈다. 1학기 중간고사에서 30점대였던 그의 수학성적은 최근 치른 시험에선 60점대로 전교 39등을 기록했다. 박군은 “처음으로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경험을 했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게 가장 좋다”며 웃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 자사고·외고를 폐지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바로 일반고의 상황이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경복고처럼 일반고 스스로 학생이 원하는 수업·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노력이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일반고 살리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