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주요 요직 다 거친 '경제통'
화폐개혁 실패의 구원투수로 등판
'6.26방침' 주도하면서 경제안정에 주력
김정일에서 김정은 넘어가는 권력교체기
큰 대과없이 총리 마치고 물러나
국가원로로서 조용하게 활동
최영림이 총리로 재직할 당시는 북한이 1,2차 핵실험한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가 강화된 시점으로 살림살이가 더 쪼들려 있을 때였다. 전임 김영일 총리는 화폐개혁 실패와 종합시장 폐쇄에 따른 물가인상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김영일과 함께 경제를 이끌었던 곽범기, 오수영, 박명선 부총리도 함께 물러났다.
대신에 부총리로 강능수, 김낙희, 이태남, 전하철, 조병주, 한광복 등을 보강했다. 이 가운데 강능수를 제외하고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전문가들이었다. 김낙희는 협동농장경영위원장 출신으로 황해남도 당위원장을 지낸 사람이고 이태남은 황해제철연합기업소·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강선제강연합기업소 당 위원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조병주는 용성기계연합기업소 지배인 출신이다. 최영림은 이런 사람들을 보강시킴으로써 경제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려고 했다. 강능수는 문화상과 당 영화부장 겸 국가영화위원장 등을 역임한 문화계 인사였다.
최영림은 새롭게 구성한 부총리와 함께 경공업과 인민 생활 향상에 관심을 쏟았다. 화폐개혁과 종합시장 폐쇄로 인한 후유증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실제 생활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김정일과 김정은의 현지지도도 인민생활과 관련된 것이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협동농장은 작업 분조를 줄이고 생산품의 일부를 농민들이 소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국가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면 그 생산물을 국가와 분조가 7대 3으로 나누도록 했다. 이전보다 농민들의 몫이 많아져 근로의욕을 자극할 수 있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최영림이 총리로서 이런 변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이전의 몇 차례 변화 시도가 그랬던 것처럼 6.28방침도 체재 내의 부분적 개혁을 넘어서지 못했다. 최영림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큰 대과없이 절반의 성공을 마치고 2013년 4월 총리를 박봉주에게 물려주었다. 김정은은 총리가 정치적 힘이 없으면 어렵다는 것을 알았는지 정치국 후보위원도 아닌 박봉주를 바로 정치국 위원으로 임명했다. 박봉주는 지난해 6월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했다.
최영림은 총리에서 물러난 뒤 최고인민회의와 전국노병대회 등에 참석해 원로로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노동당의 재정관리 사업을 감사하는 당중앙검사위원장인 최승호가 아들이며 북·미 간의 1.5트랙(반관반민)을 주도하는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이 딸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