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이하 김)=당신 소설 『굶주린 길』을 재미있게 읽었다. 서양소설과 많이 달랐다. 사후세계가 나오고, 소설 속 시·공간이 뒤죽박죽이다. 마치 한국 옛날이야기 같았다.
▶김= 한국에도 구전 이야기 전통이 있었다. 20세기 들어 서양 소설기법이 들어와 지금의 한국 현대문학으로 발전했다.
▶오크리=서양의 소설양식이 당신의 리얼리티를 잘 대변한다고 생각하나.
▶김=지금까지 소설 쓰면서 큰 불편을 못 느꼈다. 다만 최근에 조선시대가 배경인 소설을 쓰면서 옛날 서적을 참고하는데 과거 우리 선조들이 인식했던 시·공간이 당신 소설과 비슷했다. 꿈과 현실이 마구 뒤섞여 있다. 그 풍성한 이야기를 서양 소설식으로 썼다가는 제대로 못 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작가에게 언어장벽은 해외 진출의 걸림돌이다. 영어 사용자는 유리할 것 같다.
▶오크리=내가 지금 누리는 것들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싸워서 획득한 거다. 소설에 대한 나 자신의 고정관념을 매일 허물어뜨리며 '마음의 식민지'에서 탈출하고자 한 결과다. 다시 말하지만 서양의 리얼리티는 하나의 구성물일 뿐이다. 예술가라면 당연히 문제 삼아야 한다. 그럴 때 싸움은 작품이 영어로 번역되느냐가 아니다. 자신만의 리얼리티를 찾아야 한다.
▶김=리얼리티와 다른, 시스템이라는 것도 있다. 글로벌한 차원의 작가 선별 시스템 말이다. 작가의 개별적인 리얼리티가 다양성에 도움이 되는 건 맞다. 하지만 그러러면 먼저 뉴욕·런던의 문학시장에 진출해야 하는데 한국 작가에게는 쉽지 않다.
▶오크리=시스템은 변한다. 그걸 바꾸는 건 작가들 몫이다.
▶김=어떻게 바꾸나.
▶오크리=작품을 통해, 시장의 한계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시장에서 인정받는 한국 작가가 늘어나면 시장은 결국 변한다. 작가가 시장에 맞춰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건 문화적 자살 행위다. 작가는 정확하게 자기가 하던 일을 하면 된다. 영어 사용 시스템에 들어오려 애쓸 필요 없다. 지금 영국에서 폭발을 일으키는 건 한국처럼 영국 바깥 작가들의 작품이다.
-화제를 바꾸자. 기술 발달로 문학은 어떻게 바뀔까.
▶오크리=인터넷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읽을 거리가 쏟아진다. 몇년 전까지 스마트폰으로 소설을 읽으면 종이책으로 볼 때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소설을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읽는다. 스마트폰이 문학의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종이책의 보급은 인간 역사에서 매우 짧다. 인쇄술이 발명됐을 때도 사람들은 문학이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김=요즘 스마트폰의 음성변환 앱은 소설을 읽어준다. 구술 전통과 이어진 당신 소설이 기술발달로 인한 문학의 미래와 겹쳐 흥미롭다.
-디지털로 소설의 존재 가치에 변화는 없을까.
▶오크리=소설을 읽는 것은 타인의 삶에 참여하는 행위다. 다른 어떤 예술도 소설만큼 타인의 삶에 깊숙히 끌어들이지는 못한다. 30년 친구 사이라도 못하는 얘기가 있지 않나. 소설은 친구를 50년 사귄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단숨에 알게 한다. 사람을 연결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다. 비행기나 도시보다도 특별하다.
▶김=소설에서 느끼는 경험의 강도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세다고 생각한다. 영상은 시청자를 어느 정도 구경꾼으로 놔두지만 소설은 독자가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끝까지 읽을 수 없어 그럴 거다.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한 방법인데, 그게 막히면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지 않을까. 미디어가 바뀌어도 문자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려는 욕망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