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서구 부용동에서 했다. 옛 법원과 경남도청(법원은 연제구 연산동으로, 경남도청은 경남 창원시로 옮겼다) 길 건너편에 있다. 지금은 조용한 주택가이지만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관청가로서 제법 붐비던 곳이었다. 노무현·문재인 법률 사무소가 있던 곳에서도 멀지 않다. 가게가 관청 근처에 있어 부산 근무 경험이 있는 외지 출신들도 이 가게와 그곳에서 내는 메뉴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요즘은 휴가로 부산에 가서 식도락을 즐기다가 이 가게를 찾는 사람도 많다.
가게 이름에 ‘완당’이란 메뉴를 앞세웠지만, 부용동 가게의 경우 벽에 붙여둔 메뉴에는 완당이 아닌 ‘발 국수’를 맨 앞에 적어놓았다. 이름이 다를 뿐 사실은 메밀국수다. 국수 제조과정에서 문 앞에 치는 발에 걸어 말렸거나, 반죽한 메밀가루를 천에 싼 다음 발로 밟아 만든 게 아니냐는 상상을 하게 하는 묘한 이름이다. 오래 전 주인에게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느냐고 물어봤더니 메밀국수를 채발 같이 생긴 용기에 얹어준다고 해서 손님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 집의 핵심 메뉴이자 고유 메뉴인 완당은 그 다음에 적혀 있었다. 손님들이 아무래도 특색 있는 메뉴인 완당보다 일반적인 음식인 메밀국수를 더 찾아서 그런가 싶다.
이 집 완당 메뉴는 완당만 넣어주는 ‘완당’과 완당에 생라면 비슷한 이 집 특유의 면을 담아주는 ‘완당면’이 있다. 그 외에도 돌냄비우동, 냄비우동, 튀김우동, 유부우동 등 다양한 우동류와 유부초밥과 김초밥이 있다. 메뉴를 보면 면에 상당히 자신이 있는 집이다. 하지만 단골 입장에서 이 집은 어디까지나 완당을 우선적으로 먹으러 가게 마련이다.
완당은 작은 콩알 정도로 크기가 작지만 고소한 맛이 일품인 소와 무지무지하게 얇고 하늘하늘한 껍질이 일품이었다. 밀가루를 아주 얇게 펴서 껍질을 만드는 기술 덕분이다. 소의 10배가 넘는 넓이까지 편 덕분에 입에 들어가면 호들호들한 것은 물론 쫄깃하기까지 해 식감이 아주 독특했다. 입을 즐겁게 하는 식감이 날 수밖에 없다 이 껍질을 날개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기와 채소로 만드는 소의 고소한 맛보다 이 밀가루 껍질 날개의 식감이 오히려 더 자극적이고 유혹적이었다.
중국식 원턴은 화교들이 많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이나 영국 런던의 레스터 스퀘어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국인 입에도 잘 맞아 상사원, 유학생,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영문으로는 통상 원턴(wonton)으로 쓰지만 wantan, wanton, wuntun 등 가게마다 통일되지 않은 다양한 철자로 쓰고 있었다. 홍콩에 가봤더니 한자 표기로 雲吞이 대세였다. 대만에서는 북방에서 쓰는 餛飩에 남방에서 쓰는 雲吞은 물론 扁食이라는 표기도 쓴다고 한다. 중국 남북 모두에 고유의 한자 표기까지 다양하게 쓰는 셈이다. 쓰촨성에선 抄手라고도 쓴다고 한다. 맑은 국물을 쓴다고 清湯이라고 쓰는 곳도 있다고 한다. 중국은 워낙 큰 나라라서 음식문화도 지역별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원턴은 돼지고기, 새우, 채소 등 여러 가지 소를 각각 이용해 실로 다양한 종류가 있다. 특히 새우 원턴이 인기가 높다. 탕은 물론 면을 넣은 누들스프, 만두처럼 따로 내는 튀김까지 다양한 음식으로 낸다. 해외의 중국 식당에선 서구인 사이에도 인기가 높다. 무난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묘한 매력이 있는 음식이다. 화교들이 많이 사는 동남아에선 현지화가 이뤄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식당에서도 판다. 심지어 해외에서 문을 연 동남아 식당에도 있다. 이런 음식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오게 된 것이라면 음식이 문화교류의 산 증인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하지만 중국의 원턴과 18번 완당집의 완당은 서로 조상만 같을 뿐 현재의 모양과 맛은 사뭇 다르다. 면과 국물은 물론 ‘알맹이’라고 할 수 있는 원턴까지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원탄은 대개 큰 대추에서 호도만한 것까지 큼지막한 게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소를 둘러싼 밀가루로 두툼했다. 18번 완당은 후루룩 빨려 들어가면서 입에서 촉촉한 느낌을 주는데 중국 식당에서 먹는 완툰은 조금 뻑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밀가루와 달걀 등을 함께 넣어서 그런가. 아니면 밀가루를 치대고 얇게 미는 기술이 달라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알알이 톡톡 씹히는 새우가 든 원턴은 조금 덜한데 고기 원턴은 뻑뻑함이 더한 듯 했다. 새우 원턴도 신선한 생새우를 쓴 것은 촉촉한 맛이 나지만 값이 조금 재료비가 경제적인 자숙새우(찐새우)를 쓴 것은 팍팍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원턴이 풍토와 사람들의 입맛이 다른 일본과 부산을 거치면서 나름 개량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부산 사람의 입맛이 강하게 작용해 현재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중국에서 나온 원턴이 일본과 한국을 거치면서 다양한 문화 접촉, 문화 접변, 문화 융합, 문화 하이브리드 현상을 거쳐 부산에서 결실을 맺은 게 바로 이 18번 완당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산의 전통적인 개방성, 국제성, 그리고 적극적인 성격이 합쳐져서 이 같은 결실을 맺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한중 교류의 깊은 역사의 작은 수확물이기도 하다.
글=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리=차이나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