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양학(양민학살)’이라고도 부르는 양민 학살은 이미 뛰어난 능력을 갖춘 학생들이 좋은 학점을 받으려 기초 수준의 강의에 몰려드는 탓에 정작 그 수업이 필요한 다른 학생은 CㆍD를 받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중국어가 유창한 학생이 A를 따기 위해 기초 중국어 강의를 듣는 식이죠.
대학 따라 A 받는 학생 비율 천차만별
한양대(교양)ㆍ서울대(전공)는 수강생 절반 ‘A’
대구한의대ㆍ목원대ㆍ상지대 등은 20% 밑돌아
서울 대형 대학, 국공립대는 학점 후한 편,
‘비서울 사립대’는 A학점 비율 낮아
‘학점 인플레’에 정부, 대학 평가에 반영
불이익 우려한 지역 사립대들 규정 고쳐
그런데 대학마다 A·B·C·D·F를 받는 학생 비율이 꽤 차이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매년 대학정보공시 사이트(대학알리미)를 통해 대학별 ‘성적 평가 분포’ 현황을 공시합니다.
이 자료를 활용해 재학생 5000명 이상인 117개 4년제 대학(교대 등 제외) 중 지난해 1, 2학기 교양·전공 강의에서 A학점(A+·A0·A-)를 받은 학생의 비율이 높은 대학과 낮은 대학을 살펴봤습니다.
반면 A를 받은 학생 비율이 꽤 적은 대학도 많습니다. 대구한의대(16.9%), 목원대(17.9%), 상지대(18.7%) 등 3곳은 A를 받는 학생이 다섯 명 중 한 명에도 못 미칩니다. 비율이 가장 높은 대학(한양대 서울)과 낮은 대학(대구한의대)의 격차가 34.7%p에 이릅니다.
전공 강의도 대학 간 격차가 심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목원대(20.6%), 상지대(21.2%), 대구한의대(22.3%), 남서울대(24.5%) 등은 전공 강의를 들은 학생 중 A를 받은 비율이 넷 중 한 명에 불과합니다.
대학들을 설립 유형(국공립ㆍ사립), 소재(서울ㆍ‘비서울’)로 나눠보면 보다 확연히 드러나죠. 교양 강의에서 A학점을 받은 학생 비율을 보면 서울 소재 대학은 34.5%, 비서울 대학은 28.5%로 6%p 정도 차이납니다. 국공립대(32.1%), 사립대(29.4%) 간의 차이도 확인할 수 있죠. ‘비서울 사립대’는 교양 강의(27.3%), 전공 강의(30.6%) 모두 A학점 비율이 전체 대학 평균(30%, 33.3%) 보다 낮습니다.
거듭되는 비판에도 이러한 관행이 개선되지 않자 2013년 교육부가 ‘칼’을 빼들었습니다. 재정 지원에 관련된 각종 정부 평가에 지표로 포함됐던 ‘학사관리(성적처리)’의 배점을 높인건데요. 물론 이 지표엔 ‘성적(학점) 분포의 적정성’을 따지는 항목이 있고요.
평가 결과에 따라 수십억원의 정부 지원이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이라 대학들은 부랴부랴 ‘학점 다이어트’에 나섰습니다. 특히 재정 상황이 어렵거나, ‘부실’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학교 존립에 치명타를 입는 지역 사립대들이 적극적이었죠. 학사관리 규정을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고치고, AㆍB학점 비율을 줄이고, 재수강을 제한하는 대학들이 늘었죠.
서울에 있는 대형 대학이나 국공립대가 A학점을 많이 주는 데 비해 ‘비서울’ 사립대는 적게 주는 데엔 이런 대학 사정이 반영된 겁니다. 논란이 됐던 ‘성적 분포의 적정성’ 항목은 2015년 시행된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평가에선 제외됐습니다.
요즘 대입 수능, 고교 내신를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엄격한 상대평가가 학습 의욕을 높인다는 본래 취지와 달리 ‘시험을 위한 공부’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대학의 학점제도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대신 수업의 특성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학, 교수, 학생들이 함께 지혜를 모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