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러시아에서 ‘2017 모스크바 국제영화제’가 개막된다. 초청작 중 화제를 불러일으킬 한국 작품이 하나 있다. 영화 제목이 ‘산상수훈’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그리스도교 배경을 갖거나 신학을 전공한 인물이 아니다. 파르라니 머리를 깎은 비구니 스님이다. 주인공은 대한불교조계종 국제선원장인 대해(大海·58·본명 유영의) 스님이다.
‘산상수훈’ 모스크바 영화제 초청
“이브가 먹었는데 왜 내가 원죄?”
동굴 속 신학생 8명의 문답 내용
“성경·불경 모두 진리를 써놓은 책
종교 근원 찾는 징검다리 놓고 싶어”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5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대해 스님과 마주앉았다.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한 마디로 무슨 영화인가?” 스님의 답도 간결하게 돌아왔다. “때를 벗기는 영화다.” 이렇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 때를 벗긴다니, 무슨 때인가.
- “성경에서 하나님(하느님)은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셨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먹어버렸다. 그 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하나님과 멀어져 버렸다. 그걸 되돌리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이다’고 했다. 마음이 청결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선악과의 때를 벗겨야 한다. 이 영화는 그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때를 벗기는 영화다.”
- 불가(佛家)의 스님이 왜 ‘산상수훈’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었나.
- “20년 전에 ‘아름답고 푸른 지구를 위한 교육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이 세상을 아름답고 푸르게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예수님이 설하신 ‘산상수훈’에는 아름다움도 있고, 푸름도 있다.”
- 아름다움은 뭐고, 푸름은 뭔가.
- “나무로 치면 ‘푸름’은 뿌리다. 땅속에 있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영원한 생명이다.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뭘까. 땅 위에 드러나 있는 나무의 잎이다. 눈에도 보이고, 손에도 만져진다. 한마디로 이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게 ‘아름다움’이다.”
- 왜 성경과 예수의 설교를 택했나.
- “성경은 경전이다. 불경도 경전이다. ‘경전’이란 게 뭔가. 진리를 써놓은 책이다. 성경도, 불경도 모두 진리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비유로 써놓다 보니 사람들이 알아먹기 힘들다. 어려워한다. 종교는 한 그루 나무다. 우리는 나무의 근원인 뿌리를 찾아야 하는데 흙에 덮여서 안 보인다. 그 때문에 경전은 종종 왜곡된다. 기독교도 그렇고, 불교도 그렇다. 영화 ‘산상수훈’을 통해 뿌리를 찾아가는 ‘징검다리’를 하나 놓고 싶었다.”
대해 스님은 현재 소크라테스·예수·붓다·공자 등 ‘4대 성인’에 대한 영화를 제작 중이다. 2012년에 만든 ‘소크라테스의 유언’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55회 백야영화제(2013년)에 초청됐다. 당시 영화제 측은 그가 만든 중·단편들을 모아 ‘대해 스님 감독전’을 열기도 했다. ‘소크라테스의 유언’은 교육적 측면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러시아 일선 학교에서도 상영됐다. ‘산상수훈’은 소크라테스에 이은 ‘4대 성인 시리즈’ 두 번째 영화다.
- 전문적으로 영화를 배웠나.
- “아니다. 영화를 따로 배운 적은 없다. 처음에 절의 신도들과 함께 만들었다. 신도들은 완전 아마추어다.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첫 영화인 단편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유니카 세계단편영화제에서 본선에 진출해 4위에 입선했다. 지금껏 중·단편을 합해 약 90편을 만들었다.”
영화 ‘산상수훈’의 스태프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충무로에서도 단연 톱으로 꼽히는 이들이다. 윤홍식 촬영감독은 영화 ‘집으로’ ‘청연’을 찍었고, 은희수 녹음감독은 ‘암살’ ‘변호인’ ‘도둑들’을, 함성원 편집감독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전담해 편집한 전문가다. ‘산상수훈’의 주연은 영화배우 백윤식씨의 차남 백서빈이 맡았다.
- 영화 포스터를 보니까 ‘산상수훈’이란 타이틀 외에도 ‘선악과의 비밀은?’이란 부제가 있더라.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다.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하면서 왜 굳이 선악과를 만드셨나.
- “에덴동산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하나는 생명의 나무고, 또 하나는 선악의 나무다. 두 그루의 나무, 이게 사실은 한 세트다.”
- 한 세트라면.
- “가령 금이 있다고 하자. 금으로 반지도 만들고 시계도 만든다. 금이라는 속성은 생명의 나무고, 그걸로 만든 금시계와 금반지는 선악의 나무다. 생명의 나무는 본질이고, 선악의 나무는 현상이다. 현상은 창조된 세계다.”
- 만약 선악의 나무가 없다면.
- “그렇다면 창조된 세계도 없다. 성경에는 천지창조 후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더라’고 돼 있다. 창조된 세계가 있으니 선악의 나무가 있는 거다.”
- 그럼 선악과는 뭔가.
- “우리의 본질은 ‘금’이다. 기독교에서는 그걸 ‘하나님 나라의 특질(속성)’이라고 말한다. 금은 금반지가 됐다가도 다시 금으로 돌아가고, 금시계가 됐다가도 다시 금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나는 반지야!’라고 고집을 부리면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린다. 그래서 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신의 속성이 금이라는 사실도 망각하고 만다. 그게 우리의 에고다. 그게 ‘선악과를 따먹는 일’이다. 영화 ‘산상수훈’은 어떻게 ‘선악과 이전’으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해 스님은 ‘2017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넷팩(NETPAC)상 심사위원으로도 위촉됐다. 영화 ‘산상수훈’은 모스크바 영화제가 끝난 뒤 국내에서 극장 개봉할 예정이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