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를 앞두고 만난 김 감독은 “네덜란드 친구 샬롯이 영화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초경 때부터 탐폰을 썼고, 생리대는 써본 적이 없다”는 샬롯의 이야기에 문화 충격을 받은 것. ‘탐폰은 질 속에 넣는 것이니 몸에 좋지 않다’와 ‘축축하고 갑갑한 생리대는 찰 수 없다’는 설전은 김 감독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똑같이 피 흘리는데, 왜 생리용품을 대하는 자세는 문화권에 따라 이렇게 다를까.
김 감독은 월경을 둘러싼 여러 궁금증을 영화로 꿰뚫기로 한다. ‘월경 위키피디아’라는 여성영화제 조혜영 프로그래머의 설명처럼 이 작품은 역사·종교·지역 등을 가로지르며 월경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금기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는 생리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왜 한국 여성은 질에 삽입하는 탐폰이나 생리컵에 거부감을 느끼는지 역사학자, 산부인과 의사 등 전문가를 찾아가 인터뷰했다.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
김 감독은 직접 생리컵 체험에 나선다. 이 과정은 자신의 몸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김 감독은 고프로를 머리에 쓰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생리컵에 담긴 새빨간 피를 보여준다. 그 이미지는 실로 파격적이면서 아름답다. 늘 일회용 생리대에 검붉게 응고되어 보지 못했던 예쁜 선홍색이다. “생리컵을 사용해보면서 내 몸을 더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됐어요.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컴플렉스였던 작은 가슴도 특색있고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깨달음이었고, 개인적으로 성장하는 순간이었어요.”
물론 이 영화가 생리컵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 선택권에 대한 이야기로 보는게 옳다. 김 감독은 “한 고등학생을 인터뷰했는데, 수학여행 때 바나나 보트를 타기 위해 피임약을 먹었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며 “탐폰을 쓸 수도 있는건데,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창 자신의 몸을 알아가는 중고등학생이 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밖에도 김 감독은 저소득층 ‘깔창 생리대’ 논란과 더불어 생리대를 공공재로 인식해보자는 화두를 던진다. 공공기관 화장실에 무상 생리대를 놓는 법안을 통과시킨 미국 위스콘신주의 사례가 특히 인상적이다.
생리에 대해 더 많이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것도 밝고 유쾌한 태도로.
김효은 기자 사진=정경애(STUDIO 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