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과 메이 총리가 최고의 정상 간 ‘케미(친밀감)’를 자랑한 레이건과 대처 같은 관계를 30여 년 만에 재현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레이건과 트럼프는 공화당, 대처와 메이는 보수당 소속이다. 지난해 메이 총리, 올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보수 정권이 미국과 영국에 동시에 들어섰다.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존 메이저 영국 총리가 재임한 1993년 이후 24년 만이다.
레이건과 대처는 재임 시절 ‘정치적으로, 철학적으로 마음이 통하는 솔 메이트’로 불렸다. 이들은 70년대 세계 불황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하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들고나왔다. 개인과 법인의 세금을 감면하고, 정부의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등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켰다. ‘세계화’와 ‘글로벌’ 개념은 이때 태동했다.
레이건과 다른 길 가는 트럼프
레이건의 경제정책인 레이거노믹스는 세율 인하를 통해 근로자의 노동 공급을 늘리고 기업의 투자 확대를 유도해 경제 전체의 총공급을 늘리는 공급 경제학 이론을 국가 정책에 처음 적용했다. 당시 미국 세율이 너무 높기 때문에 조세 수입을 늘리려면 오히려 세율을 낮추는 게 좋다는 경제학자 아서 래퍼의 설득에 따라 세금을 감면했다. 소련을 대상으로 군비를 증강했지만, 이를 제외한 정부 지출을 억제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레이건은 트럼프보다 앞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대선 슬로건을 내걸었다. 선거 캠페인 마지막 연설에서, 그리고 퇴임사에서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shining city on a hill)”를 미국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세계인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관용과 통합의 공동체를 세우자는 메시지였다.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성문이 있어 누구든지 의지만 있으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해 포용적 이민 정책을 추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를 제안한 레이건과 성난 미국인들이에게 고립주의를 말하는 트럼프는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스스로도 “역대 대통령 가운데 레이건을 가장 좋아하지만 그의 무역 정책에는 반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레이건은 멕시코·캐나다와 양자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세계적으로 관세를 낮추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테이프를 끊는 등 자유무역을 옹호했다. 미국 카토연구소는 “미국의 최대 교역국이었던 일본의 전자제품과 오토바이 등에 대해 엄청난 보복 관세를 부과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였지 원칙은 아니었다”며 “의회의 압력을 막기 위한 레이건의 전술적 후퇴였다”고 평가했다.
1980년대 최고 '케미' 선보인 레이건과 대처
자유 무역, 자유 시장 정책 펼치며 경제 성장
포퓰리즘 업고 취임한 트럼프와 메이는
트럼프는 보호무역, 메이는 정부의 개입 강조
대처의 경제정책인 대처리즘은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국영기업 민영화, 복지 지출 삭감 등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한 경제 개혁을 추진했다. 금융 규제를 완화하고, 외환시장 자유도를 높여 외자 유치가 활기를 띠었다. 노동 개혁을 강행해 친기업, 친시장주의를 표방했다.
미국과 영국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 나라에서 자유시장, 자유무역, 자유로운 이동이 주는 혜택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마틴 울프 FT 칼럼니스트는 “전통적인 보수주의적 사고의 범위가 글로벌 단위가 아닌, 부족 단위로 쪼그라들었다”며 “자유시장과 이방인에 대한 의구심이 팽배해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레이건과 대처 시절의 외부지향적인 경제정책이 힘을 잃어가는 경향은 비단 트럼프와 메이 정부뿐 아니라 이후에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와 메이의 공감대가 레이건과 대처만큼 강하지 못하다는 점도 ‘제2의 레이건-대처’ 커플 탄생을 어렵게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레이건과 대처는 냉전과 소련이라는 공공의 적이 있었지만 트럼프와 메이는 무역, 안보, 기후변화, 이란 핵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다”며 “무엇보다 인구 6000만 명의 영국을 유럽연합에서 성공적으로 분리하기 위해 메이 총리는 트럼프 같은 고립주의를 택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국가의 역할 다시 생각할 때
영·미의 보수 정권에서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데는 지난 40여 년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빚어낸 과오도 한몫했다.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직접적으로는 2007년 금융위기로 인해 대대적인 혼란을 야기했다. 비판론자들은 “금융 권력이 막강해지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됐고, 시장 개방으로 세계인의 무한경쟁이 시작되면서 승자와 패자를 구분짓게 됐다”고 지적한다. 이런 배경에서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을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영국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찬성표를 던지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박현영·하준호 기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