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공족’ 시대
‘공부하러 도서관에 간다’는 것은 이제 옛말이 됐다. 전국에 퍼져 있는 9만여 개(지난 4월 소상공인진흥공단 조사 결과) 카페들이 도서관 겸 사무실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했다. ‘카공(카페에서 공부하는)족’이라는 신조어가 낯설지 않을 정도다.
카공족 갈수록 늘어나
“카페서 공부” 65%, 도서관은 23%
“자유롭게 전화, 간식도 먹어 좋아”
카페 업계 엇갈린 반응
스타벅스 “카공족 위한 시설 확대”
동네 카페 “수익 내기 힘들어 고민”
주인·손님 간 규칙 필요
3시간 지나면 음료 추가 주문 등
진상손님 막기 위한 룰 만들어야
도서관보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카페의 유인 포인트다. 신씨는 “카페는 애초에 정숙을 요구하는 공간이 아니다 보니 필기를 하거나 타이핑을 할 때 눈치가 안 보인다. 또 도서관과 달리 커피나 와인을 즐기면서 책을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설문조사 응답자들도 카페의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를 강점으로 꼽았다. 전체의 82.96%가 ‘커피와 간식을 먹으며 공부하기 편해서’ ‘전화 통화 등 도서관보다 자유롭게 행동하기 쉬워서’ 카페에 간다고 답했다.
카공족이 대세인 시대에 카페 업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적극적으로 카공족들을 잡겠다는 입장이다.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인 ‘스타벅스’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대체로 좌석 여유도 있고 테이크아웃 손님도 많기 때문에 카공족들로 인해 영업에 큰 방해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도 할 수 있고 작업도 할 수 있는 지역의 사랑방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콘센트를 설치하는 등 카공족들을 위한 시설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탐앤탐스 관계자도 “학원이 많은 강남역과 노량진역·대방역 근처에 있는 매장에는 칸막이 책상도 설치했다. 대학가 인근 매장은 24시간으로 운영하면서 밤늦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카페 ‘커피빈’은 원래 매장 내에 공공 와이파이와 콘센트를 설치하지 않았다. ‘카페는 대화를 위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새로 문을 여는 매장들에는 와이파이를 설치하고 있다. 커피빈 관계자는 “와이파이나 콘센트에 대한 요구가 많아 학생이나 회사원 손님이 많은 기존 매장과 신규 매장에는 와이파이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동네의 작은 카페들은 카공족이 반갑지만은 않다. 서울 서교동에서 테이블 10개 남짓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45)씨는 “좌석이 적고 테이크아웃 수요가 많지 않은 동네 카페에서는 음료 한 잔을 5000원이라고 할 때 한 사람이 2시간마다 한 잔씩은 주문해줘야 수익이 남는다. 한 번은 오후 2시쯤 회의를 하러 들른 사람들이 점심, 저녁을 교대로 먹고 오면서 오후 8시까지 있었다. 음료 강제 주문 규정을 만들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알바천국의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1.31%가 “한번 카페에 가면 3~4시간 정도는 머무른다”고 답했다. 서울 상수동에서 입소문이 난 북카페 ‘이리카페’를 운영하는 김상우 사장도 “단골들이 와서 책 읽고 작업하는 공간을 유지하는 기쁨이 있지만 사실 수익을 많이 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카공족 전성 시대에 맞춰 카페 주인과 손님들 간에 룰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냈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누구나 공부하기 좋은 카페를 찾는 시대이기 때문에 아주 바쁜 시간대가 아닌 이상 오래 앉아 있기 좋은 카페로 입소문이 나는 것은 동네 카페에도 이득이다. 다만 ‘진상 손님’들의 행동을 막기 위해 3시간이 지나면 음료 한 잔을 추가 주문하는 등의 룰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카페가 도서관이자 작업실 역할을 대신하는 현상은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한 멍석을 깔아주면 부담을 느껴서 더 집중하기 힘들어한다. 도서관에 각 잡고 앉아 있기보단 버스에서 잠깐 보는 영어 단어가 더 머리에 들어오듯이 뭘 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덜한 카페가 점점 더 도서관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중·고딩’도 카공족 합류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의 개인과외 장소도 집에서 카페로 옮겨졌다. 강군이 공부하던 카페 한쪽 구석에서는 재수생 오승준(19)씨가 양지원(18)양에게 국어와 화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오씨는 카페를 선택한 이유로 “집에서 하면 학부모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카페에서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가르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원양도 “자유롭고 통제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S BOX] 자연의 소리 백색소음, 적막감 달래줘 집중력 높여
카공족에 대한 이야기에는 ‘백색소음’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알바천국의 설문조사에서 카공족 528명 중 116명은 “약간의 백색소음이 있는 게 집중이 더 잘 된다”고 했다.
백색소음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 자연의 소리를 말한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은 백색소음이라는 단어가 태양광을 뜻하는 백색광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배 소장은 “태양광은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빛깔이 섞인 색이다. 백색소음도 도·레·미·파·솔·라·시 일곱 가지 음계가 섞인 소리라고 해서 ‘백색’이란 단어가 붙었다”고 말했다. 배 소장에 따르면 폭포나 비바람 같은 자연의 소리는 모두 백색소음이다. 그는 “백색소음은 특별한 내용을 담지 않아 방해는 안 되면서 적막감과 외로움은 달래주기 때문에 더 오래 집중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집중이 잘 되는 소리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녹음된 백색소음을 틀어놓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종류의 백색소음을 담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도 출시됐다. 이런 앱들에 담긴 소음에는 ‘홍익대 근처 A 카페의 소리’처럼 특정 카페 내의 잡담 소리도 들어 있다. 배 소장은 “비행 시간이 긴 국제선 비행기에서도 백색소음을 틀어놓는 경우가 있다. 여러 기내의 소음이 승객들에게 거슬리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김나한 기자
김나한·윤재영 기자 kim.na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