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과 돌아본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
중앙일보는 박람회를 찾은 취업준비생 4명과 총 6시간 동안 동행했다. 취업준비생들은 점심 식사도 거르면서 박람회에서 발품을 팔았다. 하지만 박람회가 끝나고 지원 의향을 묻자 일제히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들이 ‘지원 포기’를 결정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일단 기업이 뽑고자 하는 인력의 전공과, 구직자 전공이 확연히 달랐다.
초봉 3200만원 이상 원해도
100곳 중 24곳만 기대 충족
지방기업들, 채용 고충 호소
“어렵게 뽑아도 출근 안 해”
새 정부 일자리 창출 공약
현실화 하기엔 쉽지 않아
지방 소재 국립대 공과대학 졸업예정 A씨는 “4시간 동안 채용공고를 뒤졌지만, 지원 가능한 기업은 4곳뿐이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소기업이 청년 3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이 중 1명의 임금을 3년 동안 지원하겠다 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기업이 원하는 요건에 들어맞는 사람이 드문 상황에서 이런 정책은 무용지물이다. 실제로 울산 소재 기업의 한 채용 담당자는 “분기마다 어렵게 신입사원을 선발했지만 모두 지방에서 근무하기 어렵다고 입사하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이 회사 부스에는 이날 오후 4시까지 단 6명의 지원자만 방문했다.
박람회에 참가한 241개 기업 중엔 ‘알짜’로 이름난 곳이 많다. 탄탄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 788만 대를 판매한 세계 5위 자동차그룹(현대차·기아차)이라는 든든한 납품처를 확보한 1차 협력사들이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한 석·박사급 학생은 드물었다. 중소기업을 꺼리는 이상 신산업 분야 중소기업 연구개발 예산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대통령 공약도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은 또 법정근로시간(연장근로·휴일 포함)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수익성을 맞추면서 법정근로시간을 지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구직자 눈높이를 맞추려면 연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제공해야 하는데, 회사가 수익을 내려면 불가피하게 근로시간을 초과한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 협력사 대상’을 수상했다는 중소기업이 연봉 1800만원을 제시하자 취업준비생의 반응은 냉담했다. 취업준비생 D씨는 “꼰대 기업”이라고 했고, E씨는 “당신 아들을 이 회사에 보내겠냐고 묻고 싶다”고 뒷담화했다.
동행했던 취업준비생들은 “초봉 3200만원 이상이면 굽히고 들어간다(원서를 접수하겠다)”고 했다.
채용 시장이 얼어붙는 데는 중소기업의 과도한 눈높이도 한몫한다. 한 중소기업 채용 담당자는 “영어는 읽기·쓰기·말하기·듣기 다 원어민 수준으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프랑스어·영어에 능통한 기계공학 전공자를 찾는 기업도 있었다. 아예 경력이 있는 신입사원을 뽑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른바 ‘열정페이(적은 월급을 주면서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 기업의 전형이다. 이날 박람회에서 드러난 구직자와 중소기업의 엇갈린 눈높이를 고려하면, ‘청년 15만 명을 중소기업으로 보내겠다’는 공약은 당분간 지켜지기 어려워 보였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