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
공산권 국가와 정보 이중거래, 마약 밀매 등으로
베트남전 이후 미국 최대 군사 행동으로 축출
파나마 운하는 중미의 파나마에 위치하며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국제운하다. 미국이 1904년 건설을 시작해 1914년 개통했다.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의 항로가 획기적으로 단축됐다. 운하 반환을 끊임없이 요구하던 파나마 정부는 1977년 운하의 영구 중립을 보증하는 조건으로 1999년에는 돌려받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파나마 운하 조약을 미국과 체결한다. 이 조약으로 인해 파나마 운하는 중립적인 국제 수로로서 모든 국가의 선박이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군사작전으로 체포된 노리에가는 마이애미로 이송된 뒤 마약 거래, 돈세탁 등의 혐의로 20년간 복역했다. 이후 프랑스로 인도돼 마약 조직의 자금을 세탁해 준 혐의로 6년형을 선고받고 2년여 복역한 뒤 2011년 12월 본국으로 추방됐다.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린 건 감옥이었다. 파나마 법원의 궐석재판에서 살인·횡령·부패 등의 혐의로 사실상 종신형에 해당하는 60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엘 레나세르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올해 1월에야 뇌종양 때문에 감옥에서 벗어나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왔다. 그는 지난 3월 수도 파나마시티 산토 토마스 병원에서 양성 뇌종양 수술을 받은 후 출혈로 상태가 위중해지자 긴급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 집중치료 병동에 머물고 있었고 그의 가족들은 그의 상태에 대해 함구해왔다.
카를로스 바렐라 파나마 대통령은 30일 오전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노리에가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바렐라 대통령은 "노리에가의 죽음으로 우리 역사의 한 장이 닫힌다. 그의 딸들과 친척들은 그를 평화롭게 매장할 자격이 있다"고 남겼다.
노리에가는 1934년 파나마시티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인회계사, 어머니는 요리사 혹은 세탁부로 알려져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대모의 손에서 자랐다고 한다. 파나마 최고의 공립 고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정신과 의사 혹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의대 진학이 좌절되고 사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면서 군인의 길을 걸었고, 독재와 범죄를 거쳐 오욕의 삶을 마감했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