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이 지난 올 2월, 아일랜드 3대 대형마트 중 하나인 ‘수퍼밸류(Supervalu)’에 김치가 등장했다. 일명 ‘아이리시 김치’(사진)가 탄생한 것. 채식주의자를 위해 젓갈은 뺐지만 맵고 톡 쏘는 본연의 맛을 지녔다. 반응이 예상외였다. 현지인들은 샌드위치에 넣어 먹거나 파스타 소스로 활용하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김치를 즐겼다. 180g짜리 한 팩에 3.8유로(약 4800원)라는 싸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월 2300여 개가 팔리고 있다. 3곳의 점포에 납품하기 시작한 김치는 현재 23곳의 수퍼밸류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됐다.
23세 때 빈 손으로 아일랜드행
2년 간 한식당 알바하다 요리 꿈
외식학과 입학, 밤낮없이 공부·알바
장학금 받고 눈물 ‘펑펑’ … 수석 졸업
음식업체 ‘자루’설립, 대형마트 진출
“아일랜드 넘어 유럽에 한식 알릴 것”
2010년 호기롭게 아일랜드 더블린에 도착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영어는 서툴고 주머니는 가벼웠다. 월세 30만원짜리 숙소는 새벽 3시까지 영업하는 록카페 위층에 있었다. 매일 밤 4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귀마개를 끼고 잠이 들었다. “인생은 실전이더군요. ‘하우 아 유(How are you)’로 시작되는 한국식 영어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더라고요.” 생존을 위해선 ‘영어 실력’과 ‘돈’이 필요했다. 석 달 만에 어렵사리 한식당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설거지부터 바닥 청소까지 시키는 일은 뭐든지 했다.
프렌치 식당서 남은 와인 맛보며 공부도
오전에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배웠다. 주말에는 각종 행사의 녹음이나 통역 등의 알바를 닥치는 대로 했다. 1년 학비 1만2000유로(약 1500만원)를 마련하기 위해선 쉴 틈이 없었다.
글로만 요리를 배우진 않았다. 늦은 시간까지 레스토랑에 남아 실습을 했다. “손님들이 남기고 간 수백만원짜리 와인을 따라 마시며 맛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그때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경험이었으니까요.”
이론과 실력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학교에선 전액장학금 합격 소식을 알려왔다. “아일랜드에 와서 처음으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김 대표는 지난해 ‘아일랜드 시장에서의 한식의 가능성’이란 논문으로 대학을 수석 졸업했다. 박사 과정을 밟으라는 제안이 오기도 했지만 그는 사업을 선택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맛있는 한식을 선보이고자 요리를 시작하기도 했고요.”
“인생은 실전, 실제로 해보니 할 만하더라”
지난해 9월 더블린 중심가에 있는 푸드마켓에서 음식을 처음 선보였는데 석 달이 지나자 입소문이 퍼졌다. 비가 오는 날에도 수십 명이 줄을 서 음식을 기다렸다. 소비자 평가가 좋아지자 수퍼밸류에서 운영하는 ‘소규모 식품 생산자 지원프로그램’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에 한인이 1000여 명밖에 안 되는데 한식 사업이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말도 들었지만 실제로 부딪쳐보니 다르더군요.” ‘아이리시 김치’는 시작일 뿐이다. 그의 목표는 “아일랜드를 넘어 유럽 전체에 한식을 알리는 것”이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