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딸 미카 브레진스키는 이날 자신이 진행을 맡은 MSNBC ‘모닝 조’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주고 딸에게 더없이 헌신적이었던 아버지가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병원에서다. 1970년대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브레진스키는 당시 미국의 외교 방향을 세운 전략가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과 더불어 미국의 외교 브레인으로 꼽힌다.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별세
당시 전두환 신군부와 막후협상
사형 판결 받은 DJ 감형 이끌어
“컴퓨터처럼 매우 논리적인 사람”
『거대한 체스판』 외교 저서 남겨
1981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사임하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가운데)에게 자유의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중앙포토]
최근엔 도널드 트럼프 현 미 대통령의 외교 정책도 질타했다. 지난 2월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그는 “트럼프가 주장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미국 우선주의’는 자동차 범퍼 스티커에나 쓸 구호”라며 “미국의 외교정책은 캠페인 슬로건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8년 5월 청와대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는 브레진스키 보좌관. [중앙포토]
백악관 보좌관이던 브레진스키는 카터 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이곳(백악관)의 (김 전 대통령) 구명 문제에 대한 사정을 살피고자 장교를 보냈다. 그에게 ‘김(김대중)’이 사형을 받으면 미국의 수많은 단체가 항의 시위를 벌일 것이다. 그러면 북한에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썼다. 이를 빌미로 신군부는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밀사를 보냈고, 백악관은 인권을 구실로 김대중의 감형을 요구하는 ‘막후접촉’을 벌였다. 이듬해 출범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취임 다음날 전두환 대통령의 방미 계획을 밝혔고, 사흘 뒤 김대중의 감형이 선언됐다. 브레진스키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브레진스키의 대표 저서는 『거대한 체스판』(1997년)이다. 이 책에서 그는 유라시아 대륙을 각국이 치열한 수싸움을 펼칠 체스판으로 비유했다.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는 “브레진스키는 인터뷰 시 자신의 기사가 실릴 지면의 크기를 물어본 뒤 그 글자 수(5000자)에 정확하게 맞춰 답변을 해줬다. 그러곤 ‘그 정도면 됐다(That’s enough for one full page)’고 마무리할 정도로 컴퓨터처럼 매우 논리적인 사람이었다”며 그와의 옛 인터뷰를 회고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