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엄마로 사는 삶은 이중 부담을 지는 일이다. 도나스의 분석에 따르면 엄마로서의 임무를 강요하는 ‘가부장제’와 자유시장 체제에서 끊임없이 발전하라고 채근하는 ‘자본주의’가 엄마인 여성을 동시에 압박한다. “육아를 전담”시키면서 “인정받고 싶으면 직업도 가져야 한다”고 몰아대는 것이다. “시간을 쪼개 학부모총회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도 당연히 엄마의 일인 양 여기니 “엄마 역할로 인해 완전히 힘을 소진”할 수밖에 없다. 지구 반대편 이스라엘 여성들의 고충이 우리나라 엄마들의 상황과 놀랍도록 똑같다.
누군가 내게 “엄마됨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후회한다”는 말이 “내 아이들의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의미로 곡해될까 겁이 나서다. 나는 큰딸과 둘째아들 모두 정말정말 좋아하지만 ‘엄마’란 신분이 싫을 때는 있다. 육아란 이름으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 몸이 지치고 감정 소모가 극심할 때다.
일례로 둘째아이 학교의 가정통신문을 받아보는 스마트폰 앱 이름도 ‘스쿨맘(School Mom)’이다. 가정통신문 확인까지 엄마가 할 일로 규정한 셈이다. 이렇게 육아 부담 큰 엄마 처지라고 해서 직장 생활이 호락호락할 리 없으니, 올 초 과로사한 워킹맘 공무원의 일이 남 일이 아니다. ‘엄마됨을 후회함’이란 게 한가한 감정 놀음이 아니라 목숨이 달린 생존 욕구일 수 있다는 얘기다.
엄마됨을 후회하는 여성이 늘어날 때 우리 사회가 맞닥뜨릴 결과는 뻔하다. 지난 1분기 태어난 신생아 수가 지난해보다 무려 12.1% 감소한 것을 보면 벌써 현실화된 미래인지도 모른다. 책의 저자 도나스는 인터뷰 대상자들의 ‘후회’를 두고 “사회에 울리는 경종”이라고 했다. 더 늦기 전에 엄마들에게 지워진 과중한 임무를 남편과, 사회와, 정부와 함께 감당해야 한다는 경종이다.
이지영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