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옛 땅을 대부분 차지해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불렸던 고대국가 발해. 그곳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대조영을 기리는 재실은 황제 영정을 모셨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했다. 태 회장은 “족보로 보나 발해 왕궁터에서 발굴되는 유물로 보나 발해는 우리 역사가 분명한데도 발해의 유산을 부흥시키기 위한 노력은 처참한 수준”이라며 “황제 영정을 시골 구석의 낡고 좁은 건물에 모셔 놓아 후손 입장에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영순 태씨 집성촌 ‘발해마을’
임진왜란 때 일족이 내려와 살아
142명 후손 얼굴 분석해 표준영정
“해동성국 왕릉 재현, 역사관 건립
중국의 동북공정 허점 밝힐 것”
태영철(63) 송백2리 이장은 “마을 알리기에 나선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역사관을 지어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자기네 역사로 삼으려고 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의 허점에 대해 지적하는 자료로 채울 것”이라고 했다. 2015년부터는 1년에 두 차례 대조영을 추모하는 제사도 지냈다. 제사를 지내는 날엔 전국에 흩어져 있는 후손들이 모두 모인다.
제사에 내걸리는 표준영정엔 독특한 사연도 숨어 있다. 태씨 집안 남성들의 얼굴이 이 영정에 스며 있어서다. 표준영정을 만들 때 모두 142명의 태씨 남성 얼굴 특징을 분석해 영정에 녹여냈다. 우선 182㎝ 떨어진 거리에서 105㎜ 망원렌즈로 정면과 측면, 45도 비스듬히 기울여 얼굴 사진을 찍었다. 모두 710장의 사진을 자료화했다. 이를 한국인 남성 표준얼굴과 300~500군데 기준을 놓고 대조했다. 그렇게 표준얼굴에서 벗어나는 특징들만 추출해 얼굴을 만들고 이를 민두상으로 조각했다.
이 모든 과정은 ‘얼굴 박사’로 불리는 조용진 한국얼굴연구소장이 진행했다. 조 소장은 국내를 대표하는 미술해부학 권위자다. 그는 “대조영의 실제 생김새가 전해지는 자료가 없기 때문에 후손들의 얼굴 특성을 분석해 표준영정을 만들었다”며 “태씨 집안 남성 후손들의 얼굴을 종합한 뒤 민두상을 만들고 그걸 기초로 권희연 숙명여대 교수가 영정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대조영 표준영정은 정부 표준영정 제86호로 지정돼 있다.
발해마을은 앞으로 대조영 왕릉을 마을 안에 재현할 계획이다. 태 회장은 “대조영 황제의 왕릉을 재현해 능 안에 중국 발해 왕궁터에서 갖고 온 흙을 넣어 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3년 5월 중국 지린(吉林)성 발해왕궁이 있던 자리에서 흙을 퍼 와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태 회장은 “대조영 황제 향사를 지낼 때 한 유림이 ‘영정이 제사상 위로도 못 올라가고 있으니 국가 기운이 떨어져 온갖 악재가 생긴 것’이라고 하더라”며 “앞으로 대조영 황제가 좋은 곳으로 모셔져 이 나라에도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산=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