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매일 챙긴다는 ‘일자리 상황판’ 18개 지표, 거의 월·분기 통계

중앙일보

입력 2017.05.25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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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상황판은 14개 일자리 지표, 노동시장과 밀접한 경제지표 4개 등 18개 지표로 구성돼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일자리 상황판을 집무실에 만들어 출입할 때마다 보고 고민하겠다.”

문 대통령, 5년 전 내건 공약 실현
취임 보름 만에 집무실에 만들어
이전 정부도 ‘70%고용률’ 못 지켜
보여주기 식 숫자보다 내실 힘써야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11월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한 대학생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문 대통령은 19대 선거에서도 ‘일자리 상황판 설치’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5년 만에 꿈을 이뤘다.
 
청와대가 24일 여민1관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다. 문 대통령은 이 상황판을 통해 고용률, 경제성장률, 취업자 수, 임금 격차 등 18개 지표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각 지표의 지역별·연령별 상황과 기간별 추이도 볼 수 있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대통령이 매일 지표를 보면서 살아 있는 대책을 지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역시 직접 시연에 나서며 힘을 실어줬다.


‘일자리 대통령론’에 거는 기대는 크다. 지난 두 정부가 성장에 매달렸지만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부족했다.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청년의 취업난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청춘을 즐기긴커녕 대학 4년 내내 스펙을 쌓아도 명함 한 장 찍기가 쉽지 않다. 대학생 10명 중 4명이 공시족이 됐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자 새 대통령이 줄곧 강조한 화두는 ‘일자리’였다. 일자리는 문 대통령이 내세운 ‘사람 중심 성장경제’의 출발점이다. 많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내는 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판을 보면서 불안감이 스쳤다. 지난 정부의 실패가 떠올라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고용률 70%’를 공약했다. 국무회의나 공식 석상에서도 자주 언급했다. 당시 기획재정부 공무원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나왔다. “매달 고용률 숫자를 맞추는 게 고역이다.” 관료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무리하게 숫자 맞추기에 골몰했다.
 
창조경제 주무부처였던 미래창조과학부도 마찬가지였다. ‘벤처기업 3만 개 시대’ ‘벤처투자 규모 2조원 돌파’와 같은 숫자에 집착했다. 창업을 해도 0.01%만이 ‘죽음의 계곡’을 넘고,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는데 벤처기업 수와 투자 규모를 놓고 숫자 놀음에 치중했다.
 
청와대에 걸리는 숫자는 힘이 세다. 상황판에 포함된 18개 지표는 매일 업데이트되는 게 아니다. 대부분 한 달에 한 번 통계가 나온다. 저임금 근로자 현황(고용노동부)은 1년에 한 번 나오는 통계다. 취업유발계수(한국은행)는 부정기 통계다. 언제 나올지 모른다.
 
데이터가 매일 바뀌는 것도 아닌데 상황판을 매일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까. 상황판이 없어도 대통령이 지표를 챙길 방법은 많다. 그럼에도 설치를 강조하고 시연까지 한 것은 공직사회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 취지, 이해한다. 단 ‘숫자’는 여기까지였으면 한다. 진짜 중요한 건 내실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 굳어진 상황, 4차 산업혁명의 도래에 따른 변화를 감안하면 일자리 창출은 그리 쉬운 미션이 아니다.
 
공공부문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민간이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기업은 불안하다. 성과연봉제 폐지,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원 등 새 정부의 공약이 기업의 부담을 키운다. 개혁을 하되 기업의 기도 살려줘야 한다. 기업은 성장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투자와 고용을 꺼린다.
 
문 대통령 역시 이날 “(상황판을 설치하겠다는) 약속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걸 통해 나오는 성과와 실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5년 뒤 문 대통령이 ‘일자리, 제대로 해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이벤트성 ‘보여주기’에 그치지 말고 민간에도 ‘함께하자’는 신호를 보내 2인3각 행진을 해야 한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