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는 희망, 주류는 긴장...안갯 속 문재인 경제 조금씩 윤곽

중앙일보

입력 2017.05.24 11:35

수정 2017.05.2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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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밑그림을 그릴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2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현판식을 열고 공식 발족했다. 과거 대통령직인수위 역할을 하게 될 조직으로 공약 이행 방안을 만들고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등을 수립하게 된다. 위원장을 맡은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첫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라며 “성장·고용·복지가 함께 가는 ‘골든 트라이앵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홍남기 국무조정실장(부위원장), 김 위원장,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부위원장), 윤호중 민주당 의원(기획분과 위원장). 김성룡 기자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문재인 경제’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안개를 밀어낸 건 책임자들의 공식 발언과 정부의 공개 자료들이다. 서서히 엿보이는 문재인 경제의 모습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서민·중소기업 등 비주류들에 희망을 갖게 하면서 재벌·부자·핵심 부처·대형 공기업 등 주류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내용들이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중앙포토]

①앉으나 서나 일자리

책임자 공식 발언 등으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밑그림이 서서히 그려져
예산안 편성 때도 ‘일자리영향평가’토록...일자리 창출에 예산집중 편성
부자·부처는 허리띠 졸라매야...종합과세 확대 등 부자증세, 정부 재량지출 10% 구조조정
공정위·고용부·복지부는 위상 강화...산업부는 덩치 작아질 듯, 경제부처 파워도 약화
공공기관은 성과연봉제 폐지 ‘당근’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채찍’ 동시에
중장기 목표로 당장 시행 어려운 것들도...밑그림이 작품으로 완성되려면 아직 갈 길 멀어

핵심은 역시 일자리 창출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공공부문에서 81만개, 민간부문에서 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했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각 정부 부처에 내린 내년 예산안 편성 추가지침에서도 이번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지침은 일자리 창출, 소득주도 성장, 저출산 극복 등을 예산 편성이 필요한 분야도 명시했다. 여기에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할 수 있도록 예산안을 편성하라는 의미다. 기재부는 특히 “예산요구서 제출 시 해당 예산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일자리 수를 명시하라”고 적시하면서 일자리에 방점을 찍었다. 
 
임시국회가 열리면 곧바로 제출할 수 있도록 10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도 만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1호 지시로 일자리위원회 신설 지시를 내리고 본인이 직접 위원장직을 맡았다. 부총리 후보로 유력시되던 이용섭 전 의원을 부위원장(장관급)에 앉힌 것도 일자리위원회의 높은 위상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 사건이었다. 일자리 수석도 별도로 신설해 조만간 인선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②부처·부자 허리띠 졸라매야


최근 유명 인터넷 재테크 커뮤니티들에 난리가 났다. 김동연 부총리 후보자가 “배당·이자 등에 적용되는 분리과세를 종합과세로 전환하겠다”고 밝히면서다. 현재 은행 이자나 주식 배당 등에는 15.4%의 이자소득세가 별도로 부과된다. 수익자의 근로소득 등과 관계없이 별도로 부과되기 때문에 분리과세라고 한다. 다만 금융소득이 연간 2000만원 이상일 경우에는 근로소득 등과 합쳐져 보다 높은 세율로 세금이 부과된다. 이를 종합과세라고 한다. 종합과세 최고세율은 41.8%에 달한다. 김 후보자 발언 이후 종합과세 구간을 1000만원 이상을 확대한 뒤 궁극적으로 분리과세를 폐지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면서 금융 투자자들이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기재부도 종합과세 적용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현재 비과세·감면이 적용되는 금융상품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이다. 소득세 최고세율, 법인세 최고세율의 상향 조정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 고소득자들의 세금이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다. 다만 증세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못 박았기 때문에 당장 세금이 오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기재부의 예상이다.  
  
증세에 앞서 시행되는 건 정부 지출 감축이다. 기재부는 각 부처에 보낸 내년 예산안 편성 추가지침에서 재량지출을 10% 감축하라고 지시했다. 정부 재정지출은 복지 등에 사용되는 의무지출과 인건비 등에 사용되는 재량지출로 나뉜다. 올해 예산에서 재량지출은 205조원. 10%는 20조원 정도가 되는데 이는 문 대통령이 재정개혁으로 조달하겠다고 밝힌 금액(연 22조원)과 비슷하다. 결국 정부와 상대적인 고소득자들은 지금보다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③공정위·고용부·복지부 뜨고, 산업부 등 경제 부처 진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공정위에 기업집단국을 만들고, 4대 재벌에 대한 조사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국이 하나 생기면 상당한 규모의 인력이 새로 충원되야 한다. 공정위의 덩치가 더 커진다는 얘기다. 질적 측면의 업그레이드는 더욱 폭이 넓어진다. 기업집단국은 과거 대기업들을 떨게 한 조사국의 새로운 이름이다. 1996년 만들어진 공정위 조사국은 대기업 잡는 저승사자로 명성을 떨쳤지만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지적을 2005년 없어졌다. 조사국이 기업집단국의 이름으로 부활하면 ‘경제 검찰’로서의 공정위 위상은 한층 확고해질 전망이다.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공정위와 달리 산업통상자원부는 규모 축소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광온 국정기획자문위 대변인은 24일 1차 조직개편 대상으로 ^중소기업청의 부 승격, ^통상 기능의 외교부 이양, ^소방청과 해경의 독립을 제시했다. 산업부는 부의 정식 명칭대로 산업, 통상, 자원 부문으로 크게 나뉜다. 박 대변인 말대로라면 이 중 통상을 통째로 잃게 됐고, 산업 중에서도 중소기업 관련 부문은 새 부처로 넘겨야 할 상황이다.  
  
산업부 뿐 아니라 그 동안 정부 부처의 주류로 활약해 온 경제 부처들이 전반적으로 약화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23일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의 핵심으로 ‘성장·고용·복지가 함께 가는 황금 삼각형’을 제시하면서 “과거에는 기재부·산업부·금융위원회 등 경제 부처 중심으로 경제 전반을 운영했지만 이제는 (경제 부처들과)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가 ‘삼각편대’를 이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부와 복지부의 위상이 경제 부처들만큼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정권이 교체되면 조직이 공중분해될 것이란 예상이 파다했던 미래부는 산업부와 달리 안도의 한숨을 쉬는 분위기다. 당초 대선 기간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정치권과 학계에선 박근혜 정부에서 신설된 미래부의 해체를 전제로 한 다양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쏟아냈다. 하지만 대선 직전 문 대통령이 큰 폭의 조직 개편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하며 미래부를 해체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하며 운명이 바뀌었다.  
 
미래부는 기존 과학업무와 함께 산업부에 분산돼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부 내부에선 문 대통령이 국무조정실장으로 임명한 홍남기 전 1차관의 후임과 신임 미래부 장관의 인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 조직 개편은 내년에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는 23일 2단계 조직개편안을 언급했다. 최소한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1단계로 진행한 뒤 내년 하반기 원구성과 개헌이 추진되는 시점에 2단계로 조직개편안을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권에서 개헌 시점으로 언급되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전후에 대규모 조직 개편이 이뤄질 수 있다. 김진표 위원장 역시 2단계 정부조직개편 방안에 대해 “가능한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④채찍과 당근 함께 받는 공공기관

지난 12일 인천공항공사 4층 CIP 라운지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공공기관 직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공공기관, 정확하게 말해 공공기관의 정규직들은 채찍과 당근을 함께 받게 됐다. 당근은 성과연봉제의 폐지다. 김진표 위원장은 23일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사회분과위에서 깊이 있게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공공기관 개혁 차원에서 120개 기관에서 기존 간부들에게 적용되던 성과연봉제를 4급 이상 일반 직원들로 확대했다. 당시 노동계는 크게 반발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연공서열대로 급여가 올라가는 구조도 맞지 않지만, 일방적인 성과연봉제에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성과연봉제 대체 제도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가속화하면 공공기관 정규직들이 일정 부분 양보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공공기관 중 상당수는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데 한 해 인건비 한도가 미리 정해져 있다. 비정규직이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인건비가 크게 늘어날 수 밖에 없는데 현 시스템에서는 기존 정규직이 급여를 깎아서 새 정규직에 나눠줘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밑그림들이 제대로 된 작품으로 완성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익명을 요구한 기재부의 한 간부는 종합과세 전환과 관련해 “종합과세는 장기적으로 들여다보는 사안이라 세제가 당장 크게 바뀌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세금 문제는 당사자들에게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라 먼저 손대기에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증세는 재정개혁 이후에도 재원 마련이 여의치 않을 경우 국민의 양해를 구해서 할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정부 지출 감축과 관련해서도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하나의 예산 사업에는 연관돼 있는 민·관 인사와 업체들이 매우 많다. 사업을 없애면 이들은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되기 때문에 사업 하나를 없애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전원의 정규직화나 성과연봉제 폐지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24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정부 부처들의 국정자문위 업무보고를 시작으로 상당 기간 세부적인 정책의 가닥을 잡아야 할 상황이다. 김진표 위원장도 “6월말까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자문위 차원에서 마련해 7월초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며 “이 과정에서 201개의 대선 공약을 100개로 줄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세종= 박진석·이승호 기자 kaila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