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사회가 경험한 촛불 집회,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 대한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77·사진)의 평가다. 대표적인 지한파 작가인 그는 “한국은 제2의 고향 같다. 한국 아닌 곳에 있을 때도 항상 한국의 정치·문화 뉴스를 챙겨 읽는다”며 이런 발언을 했다. 23일 기자회견에서다. 그는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동 주최해 25일까지 열리는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포럼 참석 위해 온 노벨상 작가
서울은 변화무쌍한 판타지 도시
‘빛나’가 주인공, 귀신·선녀 등장
내일 ‘작가와 시장’ 주제 기조강연
민족주의는 왜 나쁜 것이냐고 묻자 “애국주의가 자기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라면 민족주의는 자기 것만 보호하기 위해 폐쇄적이 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문학과 관련지어 “문학은 폐쇄적이어서는 안 된다. 외부의 위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타자 수용을 거부해야 한다는 식으로 문학을 하려 한다면 정말 위험한 일이다. 문학은 타자를 사랑하고, 다양한 외부의 경향과 사고에 개방적이어야 한다. 그게 문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서울을 배경으로 한 새 소설을 집필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서울과 관련된 소설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오래 전부터 서울에 자주 와 거주하며 다양한 체험을 했는데 그에 대해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삶에 대한 사실적 묘사보다는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본 서민들의 동네, 신촌이나 여의도, 잠실 같은 곳에서 받은 느낌이나 감정을 그릴 예정”이라고 했다. “‘빛나’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이 전신이 마비돼 이동할 수 없는 또 다른 여성에게 자신이 목격한 서울의 모습을 상상력을 가미해 얘기해주는 형식인데, 귀신이나 선녀 같은 여러 화자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르 클레지오는 “서울에 있다가 파리로 돌아가면 고정된 느낌, 변화하지 않고 예전 유산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듯한 느낌, 프랑스 고전주의 시대의 시간이 그대로 흐르고, 왕정이 남아 있는 듯한 오래된 도시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에 비해 서울은 인구 유입 등으로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함께 사는 다층성의 도시인 데다 변화의 움직임이 강하고 그를 통해 뭔가 새롭게 구축되고 있고, 다양한 상상력이 가능한 느낌이어서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문학적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판타지가 넘치고, 다양한 상상력이나 감성이 충만하다보니 문학적 특성을 갖는 게 서울의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얘기다.
“당신 소설 문장에서 시적인 느낌을 받는다”고 하자 “문학 장르 사이에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있더라도 유연한 개념이고 얼마든 변화 가능하다. 가령 소설에 음악적 요소가 들어가거나 반복적 테마가 등장할 수도 있고 심지어 스토리 없는 소설도 있을 수 있다”며 “그런 소설이 한국에서도 많이 쓰이는데 대표적인 작가가 한강”이라고 했다.
르 클레지오는 25일 ‘작가와 시장’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서울 소설’은 다음달 탈고해 여름 막바지에 한국과 프랑스, 미국에서 동시에 출간한다. “중요한 건 제목을 ‘하늘 아래 빛나(Bitna under the sky)’로 이미 정했다는 것이다. 제목을 정하면 소설은 반 이상 된 것”이라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