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아가 영어에도 한국식 존댓말에 해당하는 어법, 즉 상대를 존중하면서 보다 정중하게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존재한다. 돈을 좀 달라(“Give me some money.”)고 하는 대신 돈을 줄 수 있겠느냐(“Can you give me some money?”)고 묻는 것처럼 직접적인 요구를 하지 않고 가능한 한 부드럽게 요청을 하는 방식이 이에 해당된다. 끝에 플리즈(please)를 붙이거나, 조동사 can 대신 could를 사용하면 더 정중하게 들린다. 이 경우 ‘돈 좀 주시겠어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표현이 된다.
영어로 대화할 때 ‘결례와 실수의 불안’ 더 커
말투보다는 늘 말하는 사람의 의도 이해가 중요
이러한 사정을 알고 나면 영어를 할 때 더 입을 떼기가 어렵다. 혹시나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또한 남이 나에게 영어로 하는 말 역시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건 별로 정중하게 들리지는 않는데 싶은 표현을 사용하거나 거두절미 딱 잘라 직설적으로 표현해 버리는 경우 같은 때 말이다. 또는 지나치게 친밀하거나 격의 없는 나머지 어쩐지 낮추어 부르는 것 아닌가 싶은 호칭을 사용하는 경우라거나. 이럴 때면 과연 저 사람이 내가 백인, 더 나아가 백인 남성이라면 저런 식의 표현을 ‘감히’ 쓸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생기는 건 단순히 자격지심만은 아닐 게다.
순간적으로 기분 상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럴 때 우선 할 일은 상대방의 의도를 살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렇게 말을 거는 상대의 의도가 친근하게 굴고 싶은 것이라거나 단지 제대로 된 어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면 굳이 정색을 하고 화를 낼 필요는 없지 않겠나. 나도 부지불식간에 유사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어법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 상대방도 가능하면 의도를 살펴 좋은 쪽으로 해석해 주기를 나 역시 바라고 있다. 더구나 그리 중하지 않은 문제의 경우 그것을 문제 삼아 좋게 유지될 수도 있는 관계를 경색시키는 것은 현명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어쩌면 중요한 것은 말투나 어법 그 자체가 아닌 것이다.
물론 이건 상대방의 의도를 좋게 해석할 여지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의도 자체가 무시나 악의에 의한 것임이 명백해 도저히 그대로 넘어갈 수 없는 상황 또한 존재한다. 아니면 사안이 중요한 것이어서 참아서는 안 되고 부르르 떨쳐 일어나 맞서 싸워야만 하게 생겼거나. 이때 싸우는 언어 역시 상대방의 것임은 외국에서 외국어로 살아가는 자의 비극이라고 하겠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