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작가와 함께 모험을, 여정을 떠나는 겁니다. 수개월 또는 더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여정을 걸어가며 서로 대화하고 작품이 나오는 거죠. 작가와 작품에 따라 저희가 질문을 많이 던질 때도, 조금 던질 때도, 아예 안 할 때도 있습니다. 상황에 맞추는 게 저희가 하는 일이죠."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활동에 대한 에르베 샹데스 관장의 설명은 여러모로 신선했다. 1984년 프랑스에서 출범한 이래 독창적이고 다양한 소장품과 예술지원활동으로 정평이 나있는 이 재단이 한국에서 대규모 전시를 연다. 30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하는 기획전 '하이라이트'는 재단이 보유한 전세계 300여 작가의 1500여 작품 가운데 그야말로 하이라이트를 선보이는 자리다.
전시작 일부만 훑어도 작가들의 국제적 명성은 물론 그 국적과 방식의 다양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호주 출신 작가 론 뮤익의 극사실적 거대 조각, 미국 작가 사라 지의 대형 설치작품, 프랑스 만화가 뫼비우스의 영상, 콩고 출신 쉐리 삼바의 아크릴 그림, 일본 작가 모리야마 다이도의 사진 등.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린치의 드로잉과 판화, 기타노 다케시의 도자 조각도 포함돼 흥미를 돋운다. 미국 뮤지션 패티 스미스의 미술작품도 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에르베 샹데스 관장 인터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30일부터 기획전 '하이라이트'
그는 "유명작가만 초대해 전시하는 건 저희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유명작가든 신진작가든 위계를 두지 않는 게 원칙 중 하나입니다. 새로운 작가를 초대하고, 그들의 메시지를 해독해주고, 탐험도 같이하며 탐구정신을 보여주는 게 저희 사명이에요" 그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전시를 하는 것"도 중요한 원칙으로 꼽았다. "현대미술 애호가나 전문가만 아니라 미술에 문외한 사람, 어린이에게도 사랑받는 전시를 하려는 게 저희 로드맵입니다." 몇 해 전 열린 기타노 다케시의 전시도 그랬다. "감독도, 배우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죠. 백지상태에서 전시를 제안했더니 처음엔 놀라고 다음엔 궁금해하더군요." 도쿄와 파리를 서로 오가며 대화가 이어졌다.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다케시가 '뭘 원하냐'고 묻길래 어린이를 위한 전시가 어떨까 했더니 바로 '좋다'고 하더군요." 영화로만 그를 알았다면 떠올리기 힘든 기획이다.
이번 서울 전시는 한국작가의 신작도 선보인다. '파킹찬스', 즉 박찬욱·박찬경 형제로 이뤄진 2인조는 영화'공동경비구역 JSA'의 판문점 세트를 소재로한 3D 영상을, 웹툰 작가 선우훈은 디지털 드로잉을 준비했다. "박찬욱 감독과 박찬경 작가는 저희가 먼저 이번 전시에 꼭 초대하고 싶다고,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죠. 선우훈 작가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여러 한국 작가 가운데 추천을 받았어요. 디지털 아티스트란 점에서 저희도 관심이 커요. 파리가 한국만큼 디지털 분야에 익숙하진 않은데 아티스트를 통해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구요."
그는 이번 전시를 "양방향 대화"라고 불렀다. "파리의 저희 소장품을 여기 선보이는 동시에 전시를 하며 한국에서 저희가 배우고 발견하는 게 많을 겁니다. 한국에서 배우는 걸 파리에 가져가고 싶어요. 파리와 서울 간의 대화라고도 할 수 있죠." 8월 15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이후 아시아 순회에 나설 예정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