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과 함께 뭔가 재미난 작당을 하고 싶다”며 ‘개봉열독’을 기획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를 15일 만났다. 이들은 “‘이렇게 해서 팔릴까’ 마음을 졸였는데 독자들의 호응이 커 너무나 기쁘다”며 즐거워했다. 포장지로 빈틈없이 감싼 채 ‘마음산책X’ ‘은행나무X’ ‘북스피어X’란 이름을 붙여놓은 책은 그동안 2만 권 넘게 팔렸다. 초판 2000부도 소화하기도 벅차다는 요즘 출판계 현실에선 기록적인 성과다. 또 책을 구입한 독자들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에 숱한 인증샷을 올리면서도, 스포일러가 되지 않았다. 단 한 명의 블로거가 공개 허용 시간을 ‘16일 0시’로 착각해 하루 먼저 책 제목을 밝혔을 뿐, 모두 “비밀 엄수”를 다짐하며 출판사의 ‘작당’에 동참한 것이다.
출판계 첫 ‘럭키박스’ 큰 호응
제목·저자 알 수 없게 밀봉해 판매
‘5월 16일 자정까지 공개 말라’ 미션
예상보다 인기 … 2만권 넘게 팔려
독자들 “서프라이즈 선물 받은 느낌”
◆“계급장 떼고 가보자”=이들이 ‘개봉열독’에 의기투합한 날은 지난 2월 13일이다. 책의 판형과 가격을 똑같이 맞추고 공동 마케팅을 펼치기로 했다. 세 권을 모두 구매하는 독자들에게 줄 사은품으로 이들의 해외 서점 탐방 기록을 묶은 책 『내 멋대로 세계 서점X 』를 준비했다. 로맹 가리의 『마법사들』(마음산책), 박유경의 장편 『여흥상사』(은행나무), 필립 커의 추리물 『3월의 제비꽃』(북스피어) 등 세 권의 소설이 ‘개봉열독’의 책으로 선정됐다. 모두 “독자들이 분명 재미있어할 책”이지만, “선입견·편견 때문에 구입을 망설일 수도 있는 책”이다. 정 대표는 “『마법사들』은 로맹 가리의 소설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꼽히지만, 마음산책에서 펴낸 로맹 가리의 열 한번째 책이어서 독자들이 ‘또 로맹 가리?’하며 그냥 지나칠 우려가 컸다”고 말했다. 『여흥상사』를 놓고 주 대표는 “국내 신인 작가의 작품은 문학성이 뛰어나도 독자들이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계급장 떼고 가보자’는 생각에 ‘개봉열독’ 책으로 골랐다”고 설명했다. 또 김 대표는 “ 평소 추리소설을 안 읽던 독자들도 일단 손에 들기만 한다면 뜻밖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고 말했다.
독자 반응도 긍정적인 평가 일색이다. “포장을 뜯으며 두근두근…서프라이즈 선물 받는 기쁨”이라며 좋아하고, “모르고 산 책이 더 재미있네”라며 신기해했다. 프로젝트는 ‘대성공’으로 마무리됐지만, 세 대표는 “똑같은 이벤트를 또 펼칠 생각은 없다”고 했다. 다만 “앞으로도 책을 만들고 권하는 행위 자체를 즐겁게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