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부문 미술평론가 문영대
남북한 모두가 외면했던 천재
러시아서 찾아내 23년간 연구
작년 국내 첫 회고전으로 결실
변월룡이 누구이기에 이토록 찬사가 이어진 것일까. 러시아 유학 시절에 그를 발굴한 뒤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연구하고 알리는 데 삶을 바쳐 온 문영대씨는 “통일 한국 미술사에서 남과 북을 잇는 연결 고리 구실을 할 작가”라고 설명했다.
“9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러시아미술관 복도를 지나는데 작품 한 점이 눈에 꽂혔어요. ‘저 그림에는 분명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데’ 싶어 이름을 보니 ‘뺀 와를렌’이에요. 개명하지 않은 변월룡은 할아버지가 지어준 월룡(月龍)을 그대로 썼고, 뺀 와를렌은 그의 러시아식 발음이었던 거죠. 유가족이 지키던 화실을 가보고 전율이 일었어요. 이산(離散)과 분단의 한민족 역사를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그림 앞에서 제 숙명이자 숙제를 찾았어요. 잊혔던 고려인, 변월룡을 평생 좇겠다는.”
그로부터 23년, 문씨는 변월룡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 속에서도 한민족의 정서를 풍부하게 담은 다작의 화가, 53~54년 옛 소련 문화성 지시로 방문한 북한에서 평양미술대학 학장 및 고문으로 일하면서 미술 교육 체계를 세운 교육자, 개성과 혼을 포착한 초상화와 중요한 역사적 장면의 기록화를 남긴 구상미술의 대가, 예술의 현실 반영에 충실했던 시대의 증언자로서의 변월룡을 수많은 자료로 입증했다. 해방 이후 단절된 한국 미술사의 공백기를 채워 줄 변월룡의 발견은 문화예술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 분단 시대 남북 역사 연구의 귀감이 되었다.
“ 이제부터가 더 중요합니다. 러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변 선생의 작품 소재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작업, 남과 북 어디에서도 초대받지 못했던 그의 그림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순회 전시를 여는 일 등 할 일이 태산입니다.”
제주 도립미술관에서 지난해 8월 5일부터 10월 30일까지 열린 ‘고국의 품에 안긴 거장 변월룡전’을 이을 지방 순회를 준비하면서 유족 동의까지 얻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문씨는 “여기서 멈추면 죽도 밥도 아니기에 이제껏 해온 것처럼 변월룡의 정신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갈 뿐”이라고 창문 너머 북한산을 바라보았다.
◆문영대
1960년생 ▶경남대 사범대 미술교육학과 졸업 ▶러시아 게르첸 국립사범대 박사 ▶현대백화점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동아갤러리 수석 큐레이터 ▶‘부르델 조각전’ ‘카미유 클로델과 로댕’전 등 기획 ▶경남대 미술교욱학과 겸임 조교수 ▶저서 『러시아 한인화가 변월룡과 북한에서 온 편지』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 등.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