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기에서부터 지켜온 민주공화국의 꿈은 대한민국 헌법 제정과 정부 수립 이후 80년 가까이 우여곡절의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30년 전 평화적으로 권위주의체제를 탈피하며 민주화를 이루었을 때 우리는 서울 올림픽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 민주정치란 묘목을 성공적으로 키워갈 것을 다짐했었다. 그러나 분단 상황에서 정상적 민주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우리는 계속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4월 총선을 통해 국민들은 민주정치 파탄의 징조를 피부로 감지하고 강력한 경고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집권층과 정치권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마비 증세를 보여 왔다.
탄핵과 대선 과정의 국민 요구는
광장의 열기와 국회 입법 결합해
생산적 제도 개혁을 하라는 것
새 시대 민주국가에 걸맞게
헌법과 선거법 개정을 완성하면
국민 합의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
이틀 간격을 두고 치러진 5월 7일 프랑스 대선과 5월 9일 한국의 대선이 보여 준 유사점은 인상적이었다. 프랑스의 경우 마크롱 당선인은 극우파 상대 후보 르펜에게 투표한 이들의 분노와 절망감, 그리고 소신을 존중한다며 더 이상 극단주의에 투표할 이유가 없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말했다. 사흘 전 국회에서 취임 선서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며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동반자”라고 밝혔다. 마크롱과 문재인은 똑같이 국민통합이 그들의, 그리고 프랑스와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열쇠임을 강조하며 임기를 시작했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그리고 오늘의 한국인이란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의문을 진지하게 던져 본 몇 달이었다. 과연 국민적 합의에 도달한 대답이 부상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쩌면 두 쪽으로 분열된, 또는 여러 쪽으로 분산된 생각이 국민들 머릿속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만들어가고 싶은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한국인이 바라는 공동체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념적 차원에서의 국민적 합의는 지금부터 열심히 만들어가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바로 그 숙제를 풀어가는 데 앞장서야 할 문재인 정부의 책무나, 국민이 주인인 나라임을 거듭 인식한 우리 국민의 시민적 의무는 막중한 것이다.
국민적 합의는, 특히 이념적 규범에 대한 합의는 공백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살아 숨 쉬는 역사 속에서 조성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념적 추상론에 얽매이는 잘못을 경계하고 국민 참여로 진행되는 구체적 작업이나 과제와 연계되었을 때에 동력을 갖게 된다. 이번 탄핵과 대선 과정에서 분명하게 부상된 국민적 요구는 시민 참여로 이루어진 광장의 열기와 대의민주주의의 제도화로 구성된 의사당의 입법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키는 생산적 제도 개혁이다.
국회에서의 개헌 작업은 상당한 정도로 진전되었다고 한다. 국회헌법개정위원장인 이주영 의원과 국무총리로 지명된 이낙연 후보자는 18대 국회에서 개헌특위의 공동위원장을 함께 역임한 지도자들이다. 새 시대 민주국가에 걸맞은 헌법과 선거법을 마련하는 개헌 작업의 완성 과정을 통해 이념적 규범 차원에서의 국민적 합의를 조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서 국가 운영의 정통성과 효율성을 생각해 국가 수도와 세종시의 관계 문제도 적절히 매듭을 지어야 될 것이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