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으로 서둘러 치러진 대선에서 후보들은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책임질 수 없는 달콤한 공약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한 공동체의 조타수가 된 대통령은 후보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다. 전체를 위해 이타성(利他性)을 발휘해야 진짜 대통령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를 비우는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좌절과 열망을 먼저 생각하면서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
대통령은 성직자 아닌 정치인
신념과 정의 추구도 중요하지만
타협 통해 결과에도 책임져야
남한 내부 통합부터 이뤄낼 때
트럼프·김정은 당당히 상대하고
전쟁 막아 경제 번영 이룰 것
새 대통령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는 안보 위기를 평화적으로 관리해 전쟁을 막는 일이다. 그래야 지속적인 경제 번영이 가능하다. 먼저 내부적 타협을 이뤄내야 한다. 협치든, 통합이든 수단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끼리 눈만 뜨면 싸우면서 핵을 가진 김정은과 거칠고 강한 트럼프·시진핑·아베·푸틴을 상대할 방법은 없다.
미국 언론은 “당선되면 가장 먼저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했던 문재인 후보가 “트럼프를 먼저 만나겠다”고 한 인터뷰 기사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보수 정권 9년 동안 막혀 버린 남북 관계의 복원이 절실하지만 굳건한 한·미 동맹을 출발점으로 삼고 최소한 북한의 핵 동결을 약속받아야 착수하겠다는 현실적인 접근법이다. 하지만 문재인은 원칙과 정의를 중시하고, 신념윤리가 강한 인물이다. 시민운동가를 꿈꿨던 그가 지지자들의 목소리에 파묻혀 반대자를 외면한다면 역풍에 직면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뒤 “개인 노무현이라면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파병은 했지만 가장 축소된 형태로, 전원 비전투 요원으로, 재건과 복원을 위한 파병을 했다. 그래서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었고 한국은 전후 복구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청와대 내부의 치열한 토론이 있었기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이 나왔던 것이다. 이건 노무현의 청와대 참모였던 문재인이 자랑스럽게 공개한 에피소드다.
새 대통령은 가장 민감한 남북 문제를 다룰 때 노무현보다 더 적극적으로 토론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같은 민족이라는 따뜻한 시선으로 대하는 통일부, 외국으로 보는 외교부,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주적으로 보는 국방부, 간첩 침투를 막기 위해 감시 대상으로 보는 국정원의 시각이 고루 반영돼야 국익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세상은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함께 사는 불완전한 공동체다. 한 세력이 정의를 독점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남과 북도 모자라 남과 남이 갈라진 한반도에선 파국이 온다. 그래서 원칙과 타협을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조화시킬 수 있는 사려 깊은 대통령이 요구된다. 새 대통령은 아무리 급해도 반대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국익을 위해 과감하게 소신을 접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전쟁을 막고 경제를 살리는 진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이하경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