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보(turbo)’.
프로농구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을 차지한 안양 KGC인삼공사의 김승기(45) 감독 이름 앞엔 항상 이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저돌적인 플레이로 코트를 누볐던 ‘터보’는 이제 코트 바깥에서 쉼없이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터보 감독’은 오세근·이정현·양희종 등 국내선수 트리오에 데이비드 사이먼, 키퍼 사익스 등 외국인 선수 2명까지 합친 베스트5를 ‘KBL의 어벤저스’로 만들어냈다.
KGC인삼공사 통합 우승 조율사
선수로 잘 나가다 부상에 휘청
“계단 오르기도 힘들어 눈물 펑펑”
전창진 감독 제의에 지도자 변신
KGC서 감독 데뷔 ‘최강팀’ 일궈
선수 시절엔 백업 멤버로 출전했고, 코치 시절엔 감독을 보좌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온전히 감독으로서 주연을 맡아 우승을 차지했으니 심경이 남다를 법 하다. 김 감독은 “이 기록은 누구도 깨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그는 용산고-중앙대-상무 시절엔 한국 농구를 이끌 최고의 유망주 가드로 주목받았다. 터프한 플레이 때문에 농구대잔치 시절엔 남성 팬들이 유독 많았다. 1997년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선 한국이 28년 만의 우승을 차지하는 데 주역이 됐다.
김 감독은 “현역 시절 화려했던 농구 인생은 1997년까지”라고 했다. 97년 상무에서 제대한 뒤 화려한 복귀를 꿈꿨지만 정작 프로농구에선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시아선수권 때부터 아팠던 무릎이 프로 생활을 하면서 내내 말썽을 일으켰다. 무릎 뼈가 앞으로 튀어나오면서 붓는 탓에 수술을 해야 했지만 그는 참고 뛰었다. 김 감독은 “ 그땐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아프단 사실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엔 계단을 오르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9년을 뛰었다. 프로농구 통산 381경기에 출전, 평균 5.34점 2.6어시스트의 기록을 남겼다. 그는 “프로에서 수모를 겪으면서 지도자로선 꼭 성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6년 5월 그는 지도자로 변신했다. 당시 동부를 이끌던 전창진 감독이 그를 코치로 영입한 것이다. 그는 탁월한 전술운용과 카리스마있는 리더십을 자랑하던 전 감독을 옆에서 지켜보며 배웠다. 2009년 전 감독이 kt로 자리를 옮긴데 이어 2015년 KGC인삼공사 감독으로 부임할 때도 그는 코치로 따라다녔다. 김 감독은 “전술 뿐만 아니라 선수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 지 연구를 많이 했다”면서 “전창진 감독님은 ‘팀의 모든 걸 알아야 하고,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전 감독님께 좋은 걸 많이 배웠다”고 털어놨다.
뜻밖에 그에게 기회가 왔다. 2015년 7월, 전 감독이 불법 스포츠도박 연루 의혹을 받고 자리를 비워 그는 감독 대행을 맡았다. 시즌 도중이던 지난해 1월엔 정식 감독이 됐다.
김 감독은 이제 농구대잔치 시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 출신 지도자들의 도전을 받는 입장이 됐다. 이번 챔프전에서 상대한 이상민 감독은 물론 문경은 SK 감독, 추승균 KCC 감독에 이어 현주엽 LG 감독까지 지도자로서 성공을 벼르고 있다. 김 감독은 “선수 땐 내가 한참 뒤졌다. 그러나 지금은 역전은 물론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관중들을 열광시키는 재밌는 농구를 펼치는 게 나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