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을 쪼갠 것은 안 후보다.”(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당을 쪼갠 것은 문 후보다.”(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선공에 나선 쪽은 안 후보였다. 그는 “계파 패권주의가 가장 마지막으로 남은 적폐(積弊)라고 본다”며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돌리기 때문”이라며 문 후보를 직격했다.
2012년 대선 때 후보 단일화 통해 ‘한배’에 몸 실어
2015년 文 주도 혁신안 둘러싸고 갈등 후 끝내 결별
이에 문 후보는 “당을 쪼갠 분은 안 후보”라고 일갈(一喝)했다. 그러자 안 후보는 곧장 “당을 쪼갠 건 문 후보라고 생각한다”고 맞섰다.
2012년 18대 대선 때 후보 단일화를 통해 ‘한배’를 탔던 두 사람이지만 돌아보면 관계는 늘 냉랭했다. 사진 속 얼굴도 씁쓸한 표정이 더 많았다. 아예 시선이 반대방향을 향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문 후보는 두 달 뒤 치러진 4월 재·보선에서 0대 4 완패의 책임론에 휘말렸다. 주승용 최고위원(현 국민의당 원내대표) 등 비노 진영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당대표 취임 두 달 후 치러진 선거 패배의 책임지고 사퇴한다는 것은 과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럼에도 당의 내홍(內訌)이 깊어지자 문 후보는 같은 해 7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을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문 후보가 제안한 혁신위원장직을 안 후보가 수락하지 않자 김 전 교육감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안 후보는 김 위원장의 혁신안을 ‘실패’로 규정하고 ‘낡은 진보 청산’, ‘부정부패 척결’, ‘새로운 인재 영입’이라는 자신의 혁신안을 제시했다.
이에 문 후보는 안 후보에게 당의 인재영입위원장·수권비전위원장직을 제안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문 후보는 ‘문·안·박 연대’(문재인, 안철수, 박원순)라는 공동지도체제 구성을 다시 제안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수락했지만 안 후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2015년 文 당대표 당선 이후 평행선 달려와
안 후보는 문 후보의 대표직 사퇴를 전제로 하는 ‘혁신전당대회’를 역(逆)제안했다.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열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안 후보는 12월 13일 끝내 탈당을 선언했다. 이후 호남을 중심으로 한 ‘반문(반문재인)’ 의원들이 안 후보 쪽에 합류하며 이듬해 2월 국민의당이 탄생했다.
4·13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민주당이 123석으로 원내 1당, 국민의당이 38석으로 원내 3당을 차지한 뒤로 두 사람의 관계는 더 냉랭해졌다. 문 후보는 안 후보를 분열세력으로, 안 후보는 문 후보를 패권세력으로 낙인을 찍으며 대권 경쟁에 들어갔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를 통해 ‘한배’를 탔던 두 사람이지만 2015년 문 후보가 당대표에 선출된 이후 완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일련의 TV 토론회는 둘의 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자리였다.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문재인·안철수 만남부터 결별까지
<2014년>
▲3월 2일-김한길·안철수 ‘신당 창당’ 공동기자회견
▲3월 16일-새정치민주연합 당명 발표… ‘진보·보수 통합’ 노선 천명
▲3월 24일-문재인·안철수, 기초선거 무공천 신경전
▲3월 26일-새정치민주연합 공식 출범…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5월 12일-정청래·이윤석 등 김한길·안철수 퇴진 요구
▲7월 30일-재·보선 완패
▲7월 31일-김한길·안철수 대표직 사퇴… 박영선 비대위 체제
▲9월 1일-안철수, 칩거 깨고 한 달 만에 복귀
▲10월 22일-안철수 ‘새정치 2기’ 선언
▲12월 29일-안철수, “지금은 총선·대선 말할 때 아냐”… 文 비판
<2015년>
▲1월 13일-문재인·안철수, 대선 이후 공식 첫만남
▲5월 19일-문재인, 안철수에게 혁신위원장 제안(이튿날 거절)
▲6월 19일-안철수 “혁신에 도움되는 당직 인선 필요”
▲11월 18일-문재인, 안철수 박원순과 당대표 권한 공유 제안 ▲11월 29일-안철수 ‘문·안·박 연대’ 거부… ‘혁신전당대회’ 역제안
▲12월 3일-문재인 “전당대회는 해법 아냐” 거부
▲12월 6일-안철수 최후통첩, “문재인, 혁신전대 거부 결정 재고해달라”
▲12월 13일-안철수 탈당 기자회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