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란 아주 기억력이 좋아. 그 사람이 쏘여온 자외선의 양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대.
-히가시노 게이고, 『백야행』 中
추리 소설을 읽다가 갑자기 잡지 속 화장품 기사 같은 여주인공의 대사가 나와 실소가 터진 적이 있다. 자외선이 피부 노화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추리 소설을 쓰는 남자 작가에게도 당연한 ‘상식’인 걸까. 굳이 추리 소설까지 멀리 갈 것도 없다. 피부 좋기로 소문난 여배우들에게 동안의 비결을 인터뷰 해보면, ‘다른 건 몰라도 자외선 차단제만큼은 꼭 챙긴다’는 말이 꼭 나온다. 피부과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노화를 막는 최고의 방법을 물어보면 비싼 안티에이징 크림이나 에센스보다 자외선 차단제를 권한다.
실제로 자외선은 노화를 일으킨다. 매일 햇빛을 보는 얼굴 피부와 햇볕을 받는 일이 거의 없는 허벅지 안쪽 피부를 비교해보자. 같은 세월이 흘렀어도 피부 결은 물론 탄력·잡티 모든 부문에서 허벅지 안쪽 피부 상태가 훨씬 좋다. 자외선이 피부 노화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화장품과 피부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지 않고 햇볕에 나가는 것 자체를 죄악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이쯤 되면 ‘자외선 차단제’는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꼽아도 될 정도다.
봄 자외선 안티에이징의 주범
그을리지 않아도 노화엔 더 큰 적
개봉 6개월 지난 차단제 효과 떨어져
봄볕이 더 위험한 이유
‘봄볕에 며느리 내보낸다’는 고약한 농담이 유효한 이유는 겨울 다음에 봄이 오기 때문이다. 무슨 당연한 말이냐고? 겨우내 햇빛에 노출되지 않았던 피부가 갑자기 햇빛에 노출되면 자외선을 막는 멜라닌 세포를 만들지 못해 피부 손상이 더 심해진다. 실제로 월별 평균 총자외선지수를 살펴보면 3월 즈음부터 차츰 보통 이상의 자외선이 관측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봄 햇살이 여름만큼 따갑지 않아 방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햇빛을 받아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거나, 까맣게 그을리지 않는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피부 노화를 일으키는 자외선은 흐린 날에도 예외가 없다. 자외선 A 때문이다. 피부과 전문의 오가나 원장(오가나 피부과 소속)은 “자외선 중에서도 UVA는 파장이 길어 흐린 날에도 구름을 뚫고 창문을 통과해 피부에 영향을 준다”며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지만 피부 진피층까지 침투해 탄력 섬유를 파괴하고 변형시키며 멜라닌 세포를 자극해 피부 잡티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파장이 짧고 강력한 UVB가 피부 표면을 까맣게 그을리게 만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쌓여 노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UVA를 노화광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UVA를 잘 막으려면 자외선 차단제 패키지에 쓰여 있는 PA 지수를 확인해야 한다. PA지수는 ‘+’로 표기되는데 ‘+’ 표기가 많을수록 차단 효과가 좋다는 뜻이다. 현재 PA지수는 4등급(++++)까지 표기된다. 전문가들은 평소에는 ‘PA++’ 정도로 충분하고, 야외 활동이 길거나 야외 스포츠를 즐길 때에는 ‘PA+++'이상을 선택하라고 권한다. SPF 지수는 UVB를 얼마나 잘 차단하는지를 나타내는 지수다. 현행 표기법상 SPF50이 최대이며(더 높은 경우 SPF50+로 표기), 보통 SPF30 정도를 사용하기를 권한다.
어떤 자외선 차단제가 좋을까
때맞춰 시중에는 다양한 자외선 차단제가 출시되고 있다. 흔히 사용하는 크림 타입부터 로션타입, 쿠션이나 파우더, 스틱, 스프레이 타입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자외선 차단제가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필수품이 되면서,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다양하게 구비해 놓고 사용하는 것이 요즘 추세다. 매일 사용하는 촉촉한 로션 타입의 제품을 바르고 나와 덧바르기 쉬운 쿠션 혹은 파우더 타입을 오후에 사용하는 식이다. 야외 활동이 많거나 야외 스포츠를 즐기는 경우를 대비해 땀이나 물에 강한 스틱 타입, 스프레이 타입도 인기다.
기능도 한층 많아졌다. 자외선 차단은 기본. 미세먼지 등 생활 공해를 차단하는 제품도 있다. 이런 제품들은 미세 먼지 차단 필터 성분을 사용하거나 먼지가 달라붙지 않도록 보송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에는 민감한 피부를 위한 순한 자외선 차단제가 인기다. 자외선을 막는 필터 성분은 화학적 차단 성분과 물리적 차단 성분으로 나뉘는데, 물리적 차단 성분으로 이루어진 ‘무기 자외선 차단제’가 이에 속한다. 숙명여대 향장미용학과 이윤경 교수는 “자외선을 흡수해 분해하는 화학적 차단 성분과 달리 자외선을 반사시켜 튕겨 나가게 만드는 물리적 차단 성분이 민감한 피부에 더 적합하다”며 “징크옥사이드와 티타늄디옥사이드 성분이 대표적이다”라고 조언했다. 다만 물리적 차단 성분의 자외선 차단제는 백탁 현상(바르면 얼굴이 하얗게 되는 현상)이 있을 수 있고 사용감도 답답한 편이다.
Q+A 자외선 차단제 별별 궁금증
- 자외선 차단 지수, 무조건 높으면 좋을까?
“현재 한국 식약처에서는 SPF50 이상의 제품은 모두 SPF50+로 표기하고 있다. 때문에 SPF100 표기 제품은 해외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차단 지수가 높다고 차단력이 비례해서 올라가지 않는다. SPF30과 50의 차단력은 1~2%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SPF100을 바르는 것보다, SPF30 이상의 제품을 권고량만큼 바르고 자주 덧바르는 것이 훨씬 낫다.”
- 얼마큼 발라야 표시된 만큼의 차단 효과를 누릴 수 있을까?
- 작년에 사용하던 자외선 차단제, 올해 계속 써도 될까?
-피부색 밝을수록 자외선에 더 취약하다는데 사실일까?
“피부색이 밝을수록 멜라닌 색소가 적다. 멜라닌 색소는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자외선에 노출되었을 때 색소 침착이 되는 것은 보기에는 좋지 않아도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즉, 피부색이 밝은 사람일수록 멜라닌 색소가 적으며 이는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보다 자외선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피부색이 밝을수록 차단제를 꼼꼼히 바르는 것이 좋다.”
남성용 여성용 차이 없어
- 남성 피부에는 남성용 자외선 차단제가 더 적합할까?
- 비행기를 타면 자외선 위험이 증가할까?
- 스마트폰을 오래해도 얼굴이 탄다?
도움말
오가나 피부과 전문의(오가나 피부과 의원 대표 원장)
이은경 교수(숙명여대 향장미용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