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음악은 어떤 점에서 독창적인가? 음악학자 홍정수씨가 40년 넘게 연구해온 윤이상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경기도 광주의 자택 모니터 앞에 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만큼 세계적인 작곡가다. 한국보다 유럽, 특히 독일에서 작품 연주가 빈번하다. 유럽의 어떤 연주자들은 윤이상을 해석하는 일에 활동의 초점을 맞춘다. 물론 국내에서도 이름은 널리 알려져있다.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 수감, 석방 후 독일 정착, 그리고 말년까지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돌아오지 못한 스토리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윤이상이 왜 세계적 작곡가인가?’ ‘그 음악은 어떤 부분이 독창적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윤이상을 40년 이상 연구한 음악학자 홍정수(70, 전 장로회신학대 교회음악과 교수)가 100주년을 맞아 그 답을 정리했다. “그간 신문 사회면에 주로 나왔던 윤이상의 음악적 독창성은 밤새워 논할 수 있는 주제”라며 예가 될 수 있는 작품도 선곡했다. 윤이상이 창작기간 36년(1968~94)동안 작곡한 118곡은 거의 모두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
윤이상 연구자 홍정수가 말하는 윤이상의 독창성
"감정적, 전통적이고 오묘하다"
20세기 전위적 작곡가들과 다른 길 가며 유럽 청중 장악
이 작품의 텍스트가 윤이상의 마음을 대변한다. 윤이상은 당나라 시인 두목(803~852)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를 가사로 썼다. 오랜만에 찾은 부모의 묘소가 헝클어져있는 것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윤이상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담아냈다. 홍정수는 “분노하는 격렬한 음향, 날카롭게 소리 지르는 악기들은 서러운 감정과 슬픔으로 듣는 사람을 직격한다”고 말했다. ‘밤이여 나뉘어라’(1980), ‘화염 속의 천사’(1994)의 절규에는 절제가 없다. 극도로 이성적인 작곡을 추구했던 20세기 초반의 작곡가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많이 연주되도록 쓴 작품
무엇보다 그는 음악적 전통과 급격하게 결별하지 않았다. 같은 시대 작곡가들은 조성을 완전히 파괴하고 음계에서 중심을 없앴다. 하지만 윤이상은 음악 안에 전통적인 화음을 숨겨놨다.
홍정수는 “윤이상은 39세에 유럽에 간 후 자신이 20세기 서양 작곡가들처럼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름대로 대응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윤이상은 부인에게 “나는 최전선의 전위파와 싸우는 작품을 쓰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 최첨단의 작곡 기법과 멀어지며 찾은 무기가 한국 음악이다.
#도교에 바탕한 독창성
윤이상은 서양음악의 최첨단 기법을 배워 고국에 이식하겠다는 생각에 유럽으로 떠났다. 하지만 현지에서 “여흥 삼아 들었던 고국의 음악을 보배로 깨달아”(1986년 강연내용 중)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고 결국 세계 음악계의 중심부에서 인정을 받았다. 음악학자 최애경은 지난달 통영국제음악제 심포지움에서 “윤이상의 삶과 음악은 과거에 대한 기억과 성찰이 새로운 창조의 길을 찾게 해준다는 예”라며 “윤이상 10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 기억을 이어간다는 의미”라고 정리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음악학자 홍정수=한국외국어대 이태리어과 졸업,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음악학 박사, 전 장로회신학대 교회음악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