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에서 시작한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The Handmaid’s Tale·시녀 이야기)’은 기독교 극우 근본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길리어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들은 전쟁과 환경오염으로 출생률이 급격히 떨어진 상황에서 여성을 국가적 자원으로 보고 적극 통제한다. 직장과 계좌를 빼앗고 발목에 네 자리 숫자와 눈 하나를 그려 넣은 뒤 가임 여부에 따라 이들을 재배치한다. 현실 속 남편과 아이를 모두 빼앗긴 채 마치 군대같은 새로운 세계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캐나다 작가 애트우드 소설이 원작
가임 여부 따라 시녀·하녀로 분류
국가 자원으로 통제되는 가상 세계
트럼프 취임 후 미래 불안 그림자
『1984』『멋진 신세계』다시 주목
이에 대해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 SF물에서 그렸던 미래가 점차 실현가능한 일들이 되면서, 당장 몇 년 안에 곧 다가올 현실로 다루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같은 디스토피아가 도래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생각하면 공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에 대해서는 “새로운 울림이 있는 디스토피아가 온다”(뉴욕타임스), “우리는 ‘시녀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가”(글로브앤메일) 등 외신들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사실 백인·남성·기독교 우월주의자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길리어드행’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취임식 이튿날인 지난 1월 21일 워싱턴 DC를 시작으로 미국 각지에서 ‘우먼스 마치(여성 행진)’가 벌어졌고, 그의 반이민정책에 반대하는 집회가 영국·인도네시아·필리핀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레이건 정부 때 처음 생긴 낙태 관련 단체 지원을 금지하는 ‘멕시코시티 정책’을 부활시키고, 비영리기구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존슨 수정헌법’ 파괴를 시도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취임 100일 만에 체포된 불법이민자 수가 전년 대비 32.6%(2만1362명) 증가하는 등 가시적인 변화가 생기자 사람들의 공포감은 한층 높아졌다. 드라마 프로듀서 브루스 밀러는 NYT 인터뷰에서 “당초 제작자 측은 여성 프로듀서를 원했다”고 털어놨다. 30여 년 동안 페미니스트들이 성스럽게 여겨온 텍스트이니 만큼 여성이 만들기에 적합한 콘텐트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러는 “이것은 남자 혹은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 생존에 관한 이야기”라며 “지난해 대선 이후 우리는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드라마 속 시위 장면에서 등장하는 “낙태는 여성의 자유” “여성의 선택은 여성의 몫” 같은 피켓 문구 역시 지난 1월 시위에서 볼 수 있던 것과 동일하다.
각색도 보다 다양성을 확보하는 쪽으로 이루어졌다. 원작 소설에서 탈출을 꿈꾸는, 주인공의 백인 여성 친구 모이라는 사미라 윌리가 맡아 흑인이자 레즈비언으로 바뀌었다. 또 원작에서 나이들고 추한 외모로 그려진 ‘아내’ 세레나 조이는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젊고 매력있는 역할로 탈바꿈했다.
최근 미국에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소설 『아메리칸 워』를 출간한 오마르 엘 아카드는 “디스토피아 소설에 대한 수요는 최악의 사태에 도달했을 때가 아닌 거기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정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시녀 이야기』(황금가지) 한국판 번역을 한 김선형씨는 “소설속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는 단지 미국만이 아니라 극우정치가 득세하는 전세계 곳곳에서 목격된다”며 “ 정부가 가임 여성 수를 표시한 출산지도를 발표한 한국에서도 여성이 자원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켰고, 이는 한국 사회에 70~80년대 미국의 전투적 페미니즘을 불러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