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반향(反響)은 5·9 대선의 성격과 구도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는 징후다. 허장성세(虛張聲勢)의 과시나 약속과는 거꾸로 겸허하고 차분하며 진실함을 엿볼 수 있는 후보가 오히려 승리할 거란 예고다. 두 가지 대세가 여기에 작용하고 있다.
배신 트라우마 앓는 국민에
진짜 적폐는 후보들의 허언
자기 한계에 겸손·진실하고
국민 마음 통합할 후보 뽑자
선두를 달리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궤도를 수정 중이다. ‘적폐 청산’에서 ‘통합 대통령’으로. 번복엔 원래 큰 믿음이 없다. 또 다른 공약의 축인 ‘재벌 개혁’ 또한 개운치가 않다. 기업에 재벌이 있다면 우리 정치의 오랜 양대 재벌은 민주당과 새누리당이었다. 재벌 정당들의 자성과 혁신 없이 경제 쪽 재벌만 손보겠다면 겸허한 자세가 아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역시 사드 배치 번복 논란 속에 모호한 4차산업 혁명과 미래를 되뇌지만 궁금증은 여전하다.
재원조차 불분명한 약속, 날이 새면 바뀌는 입장에 환호할 이들이란 더 이상 없다. 모르는 건 “못하겠다”고 하고 “생각이 짧아 번복했다”고 솔직해질 시대다. 열 명 중 한 명꼴 청년실업의 거창한 해법에 앞서 기성세대의 통렬한 사과와 성찰은 왜 없는가. 현혹과 포장은 배신의 트라우마를 들쑤시는 화(禍)를 부를 뿐이다.
또 다른 시대 흐름은 후보 개인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라는 명령이다. 호전적 북한, 중국의 몽니, 대외의존도 80% 경제와 부딪쳐 후보 자신의 예지(叡智)와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문·안 후보 모두 정치적 내공과 안팎의 인적 네트워크가 강력해 보이지 않는다.
훨씬 커진 대외의존도만큼 ‘1인 리더십’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다. CEO 출신이라 기대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옛날식 토목 경영의 리더십을 넘지 못했다. 게으름의 상징이 되고 만 ‘박근혜식 수첩’으로 해낼 건 이제 없다. 문이나 안 누가 당선돼도 120명, 39명의 의석 수론 여소야대 험로를 피할 길이 없다.
차기 대통령의 길은 하나다. 총리든, 외교든, 경제든 ‘떴다방’ 캠프를 넘어 최고의 전문가를 골라 믿고 맡겨야 한다. 그것이 분권이든, 연정이든, 공동정부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자신은 ‘국민 대통합’에 올인해야 한다. 바로 노자(老子)가 말한 지도자의 상(像)이다. “물처럼 낮은 데로 임해 백성이 군주가 있다는 걸 알게만 할 뿐이다. 백성이 스스로 공을 성취한 걸로 믿게 할 뿐이다. 군주는 인재를 관(官)의 장(長)으로 앉힐 뿐이다. 천하를 다스릴 때엔 큰 원칙만 지키고 세분하지 않을 뿐이다.”
통합된 힘을 만들지 못하면 새 대통령은 ‘국제적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할 지형이다. 북한 김정은, 중국 시진핑, 러시아 푸틴 모두 국가의 전체주의적 통제가 가능하다. 일본 아베 역시 60% 지지율을 회복했다. 국내에선 논란인 트럼프 미 대통령 역시 중국과 북한·시리아 등 외부 타깃을 향한 공세 전략으로 상황을 장악하고 있다. 둘로 나뉘어 무너질 땅에 우리 대통령이 서게 되면 스트롱맨(strong man) 5명 틈새의 왜소한 외톨이가 될 뿐이다.
뒤집어 보면 바로 이번 대선의 감별법이다. 의심스러운 얘기 하는 이, 큰소리만 치는 이, 내가 다 할 거라는 이, 감추거나 말 바꾸는 이, 편가르는 이…. 과감히 감점하자. 겸허한가, 진실성 있는가, 통합해 낼 수 있겠는가…. 그런 인물이 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최 훈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