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움직임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러시아는 동부지역의 불안을 조성함으로써 크림공화국의 실효적 지배권을 확보했고 나토 가입을 저지했다. 크림공화국은 2014년 3월 러시아와의 합병을 결정하는 주민투표에서 90%가 넘는 압도적 찬성으로 러시아로의 귀속을 결정했다.
이를 즈음해 사이버공방이 펼쳐졌다. 러시아 측 해커조직이 나토의 우크라이나 내정 간섭을 주장하며 나토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사이버공격을 퍼부었고, 우크라이나 측도 이에 질세라 러시아의 정부ㆍ금융ㆍ언론사이트들을 공격했다. 2014년 5월 우크라이나 대선 사흘 전 선관위 투표시스템이 다운됐고, 정부의 행정시스템이 러시아가 개발한 ‘스네이크(Snake)’라는 악성코드에 감염돼 마비된 적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키예프 정전과 철도ㆍ국민연금 등 주요기반시스템 해킹을 포함해 2016년 11월부터 12월까지 6,500건의 사이버공격이 러시아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러시아는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전자교란을 위한 전략적 사이버무기를 비롯한 상당한 사이버전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중심에는 러시아의 정보기관이 있다. 러시아 군사정보국(GRU)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반(反)러시아 무장 세력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의 대화내용과 위치정보를 해킹해 우크라이나 포병부대의 위치를 정확히 식별할 수 있었다. 또 크림반도에서 기습군사훈련으로 주의를 분산시키면서 크림반도에 있던 우크라이나군의 네트워크를 교란ㆍ차단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의 친위대격인 연방보안국(FSB)은 법적으로 다른 기관의 감독을 받지 않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연방보안국 요원들이 동부지역에 투입되어 분리 독립을 부추기고 무장조직 결성을 지원했다. 이와 동시에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선 개입이 불가피하다며 자국의 정당함을 각종 언론을 통해 퍼뜨렸다.
러시아 정부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명 ‘크렘린 트롤(Troll)’은 사이버여론조작 조직이다. 이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러시아 입장을 옹호하고 서방의 주장에 반박하거나 적대적 인사에 대한 음해성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우크라이나 사태 때도 우크라이나 사회를 분열시키기 위한 사이버공작을 펼쳤다.
우크라이나도 2016년 2월 러시아의 정보조작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부대(i-army)를 만들어 러시아와 사이버상에서 격렬한 여론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2016년 11월 중국ㆍ러시아ㆍ이스라엘ㆍ영국ㆍ터키ㆍ북한 등 수많은 국가들이 트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한 국제합의가 요원한 상태여서 이들 조직 간 자칫 걷잡을 수 없는 공방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는 서방사회의 균열을 조장하기 위해 사이버공간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다. 나토는 회원국가에게 러시아가 벌이는 ‘새로운 전쟁’에 대한 주의령을 내린 상태다. 러시아는 정규군의 무력충돌에 의한 전쟁이라 규정하기 어려운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개입으로 불거진 우크라이나 사태는 정보유출ㆍ여론조작ㆍ시설파괴ㆍ용병투입ㆍ사회균열, 그리고 선거개입에 이르기까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사이버전의 전초전을 보여주는 듯하다.
손영동 한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