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경북 경산시 한 농협에 권총을 들고 들어가 현금을 턴 혐의로 붙잡힌 김모(43)씨에 대한 경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김씨는 앞서 22일 오후 6시47분쯤 충북 단양군 한 리조트 주차장에서 범행 55시간 만에 붙잡힌 직후 범행 일체를 시인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빚이 많아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가 버렸다고 밝힌 권총 1정을 그의 주거지에서 7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했다. 권총은 지하수 관정에 실탄 11발과 함께 버려져 있었다. 이 권총은 45구경으로 탄창을 손잡이 쪽에 끼우는 방식이다. 경찰은 일단 이 권총이 사제 권총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정확한 확인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권총에 대한 감정을 의뢰했다. 실탄 18발을 감췄다는 김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나머지 7발도 계속 찾고 있다.
경산 자인농협 권총강도 정체는 '농부'
거주지 인근에 버린 권총·실탄도 발견
경찰, 총기 입수 경로 집중 조사 방침
앞서 김씨는 20일 오전 11시55분쯤 경북 경산시 자인농협 하남지점에 권총을 들고 들어갔다. 모자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넥워머에 장갑까지 한 상태로 철저히 정체를 감췄다. 미리 준비해 간 천가방을 창구 직원에게 던지며 돈을 담게 했다. 남자 직원이 자신에게 다가오려 하자 총알 한 발을 발사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창구에 있던 현금 1563만원을 챙겨 자전거를 타고 달아났다. 범행에 걸린 시간은 불과 4분. 경찰이 낮 12시 2분쯤 도착했을 때 범인은 이미 도망간 뒤였다.
김씨의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다. 인적이 드문 농촌 지역 은행에서 손님이 뜸한 점심 시간을 이용했다는 점, 처음엔 자전거로 달아났다가 근처에 세워둔 화물차에 자전거를 싣고 도주했다는 점, "(돈을) 담아" "휴대폰" "(금고) 안에" 등 어눌하게 단어 위주로 말을 하면서 외국인인 척 행동해 경찰 수사에 혼선을 빚게 한 점 등이 눈에 띈다. 범행 후에도 충북 단양 한 리조트에서 열린 모인에 가족과 함께 참석했을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김씨는 결국 자전거 때문에 발목을 잡혔다. 사건 현장에서 3.2㎞ 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둔 1t 화물차 짐칸에 자전거를 싣고 도주했지만 짐칸을 가리지 않고 달아난 것이 실책이었다.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TV(CCTV)를 샅샅히 뒤지던 중 짐칸에 자전거를 싣고 가는 화물차를 발견했다. 자전거가 범인이 타고 간 자전거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판단한 경찰은 이 화물차 운전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화물차 운전자는 농협에서 6㎞ 떨어진 곳에 사는 농부였다. 김씨 집 근처 창고에서 범행에 사용한 자전거가 발견됐다.
경찰은 김씨가 훔친 1563만원 중 1190만원을 회수했다. 나머지 돈을 어디에 썼는지 조사 중이다. 김씨는 "빚이 많아 범행을 저질렀다. 공범은 없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그의 진술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있다.
경산=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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