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없는 사회’는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중간 단계다. 해마다 늘던 동전 발행량은 지난해 처음 감소했다. 화폐의 전자화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국내 상거래의 50%는 신용카드로 이뤄졌다. 체크카드까지 포함하면 3분의 2가 전자 거래다. 현금 사용 비중은 26%로 뚝 떨어졌다. 해외여행을 갈 때 달러를 잔뜩 환전하고, 외출할 때 지갑 속 현금을 세는 경우도 드물어졌다. 동전의 쓸모도 매우 감소했다. 공중전화와 자판기도 카드나 지폐로 쓰는 세상이다. 동전 발행량을 줄이면 연간 수백억원에 이르는 발행 비용도 줄여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약자들이 소외될 위험도 있는 게 사실이다. 현금과 동전이 가장 필요한 게 이들이다. 상당수 어르신과 거의 모든 어린이는 자기 카드가 없다. 전자결제에 익숙지 않은 경우도 많다. 신용불량자와 빈곤층도 자신의 명의로 된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마련하기 힘들다. ‘동전 없는 사회’가 이런 이들의 삶에 불편을 줘선 안 된다. 500원 동전으로 장사하는 인형뽑기 가게, 저금통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등 당장 영향을 걱정하는 공급자도 있다. 보편적인 전자결제 수단 같은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금 없는 사회’는 피치 못할 추세다. 통화정책을 맡은 한은이 당연히 대처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화엔 항상 부작용이 따른다. 부작용이 약자에게 집중되는 정책이라면 서두를 필요가 없다. ‘동전 없는 사회’를 서둘러 확대하거나 시범사업을 의무화하려는 욕심은 당분간 접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