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조선의 역사 속에도 약(藥)과 독(毒)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사약’이다. 임금이 죄를 지은 왕족이나 사대부에게 신분을 참작해 교수형이나 참수형 대신 ‘약(藥)’을 내려(賜)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
독살 위협 시달린 조선 임금들
소현 세자는 죽을 때 비상중독 증세
“권신들, 왕 죽이는 방법으로 독 애용”
조선의 임금이 은수저를 썼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수시로 독살의 위협에 시달려 왔다는 얘기다. 조선 16대 왕 인조의 아들 소현 세자가 대표적이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돌아온 소현 세자는 인조의 냉대와 의심을 받았다. 그는 귀국 두 달 만에 말라리아가 발병했고 3일 만에 세상을 떴다. 온대지역의 말라리아는 열대형과 달리 어린이나 노약자가 아니면 급사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편을 보면 소현 세자의 독살설이 설득력이 있다.
‘세자는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빛이었고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소렴 때 시체의 얼굴을 싸는 검은 헝겊)으로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간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돼 죽은 사람과 같았다’.
개별적으로는 해롭지 않은 음식이나 약이 될 수 있지만 같이 먹으면 독이 될 수 있는 것을 먹고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임금도 있다.
조선 20대 왕 경종이다.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은 재위기간 동안은 노론·소론의 당쟁 한가운데 있었다. 경종은 동생 연잉군(훗날 영조)이 올린 게장과 생감을 먹은 뒤 밤새도록 가슴과 배가 뒤틀리는 고통을 겪었다. 16세기 명나라 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은 ‘게를 감과 함께 먹으면 복통이 나고 설사가 난다’고 쓰고 있다. 게와 감이 서로 상극이라 만나면 독이 된다는 얘기다.
며칠 뒤 의식을 잃은 경종에게 연잉군은 어의의 반대를 무릅쓰고 약이라며 인삼과 부자를 올렸다. 그날 밤 경종은 세상을 떴다. 만 36세의 한창 나이였다. 부자는 한방에서 약재로 쓰이기도 하지만 부자에 있는 ‘아코니틴’이라는 물질은 신경전달물질의 움직임을 방해해 신경과 근육을 마비시키는 식물성 독이다.
이외에도 개혁군주로 불렸던 정조와 구한말 일본의 침탈을 한 몸에 안아야 했던 고종 죽음의 원인도 독살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조선 왕 독살사건』을 쓴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한의학의 핵심은 ‘독을 어떻게 쓰는가’이다. 쓰는 방법에 따라 독이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 후기에는 당파의 정책이 왕과 다를 때 권신들이 왕을 죽이는 방법으로 독을 많이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