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도시' 싱가포르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중앙일보

입력 2017.04.1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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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간도 열 시간처럼 즐겨야 하는 여행객들에게는 밤마저도 금쪽같은 시간이다. 마침 그곳이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기 제격인 도시라면 호텔 방을 당창 박차고 나와야 한다. 다양한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기로 이름난 싱가포르도 그 중 하나. 밤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조명 쇼부터 비밀번호를 넣어야 들어갈 수 있는 바(bar)까지, 싱가포르의 진짜 밤을 즐기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의 밤 풍경. 매년 3월에는 화려한 조명 페스티벌이 열린다[사진 싱가포르 관광청]

지난 2017년 3월 4일 방영된 여행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뜬다(JTBC)'의 여행지는 싱가포르. 나이트 사파리부터 마리나 베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조명 쇼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공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출연자 안정환은 낮과는 전혀 다른 화려한 싱가포르를 보고 '두 얼굴의 도시'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확실히 그렇다. 낮의 싱가포르와 밤의 싱가포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딜 가나 정돈된 정원에 깨끗한 도로, 완벽하게 세팅된 테마파크 같은 낮의 싱가포르가 깔끔한 수트 차림의 비즈니스맨 같다면, 화려하고 역동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밤의 싱가포르는 그런 비즈니스맨이 슬쩍 넥타이를 풀고 밤놀이를 즐기기 좋은 도시다.
나이트 사파리나 루프톱 바 등 비교적 잘 알려진 코스가 아닌, 진짜 싱가포리언들이 사랑하는 나이트 라이프는 무엇일까.
 
아리랑 선율에 맞춰 라이트 쇼, 슈퍼 트리
밤만 되면 거대한 식물원 곳곳에 사람들이 누워있다. 무슨 일이냐고? 싱가포르의 초대형 정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얘기다. 지난 2012년 6월 마리나 베이에 문을 연 거대한 식물원으로 규모만 약 100㎡에 이른다. 가장 눈에 띄는 볼거리는 영화 ‘아바타’의 장엄한 자연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슈퍼 트리다. 멀리서 보면 큰 나무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수직 정원 형태의 구조물이다. 무려 16층 건물 높이로 가운데에는 엘리베이터도 있다. 해가 질 무렵 이 곳에 가면 사람들이 슈퍼 트리 밑에서 옹기종기 모여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매일 저녁 7시 45분, 8시 45분 두 차례 음악과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레이저 쇼, ‘가든 랩소디 쇼’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전통 음악부터, 팝송, 중국 음악은 물론 우리나라의 아리랑도 레퍼토리 중의 하나다. 거대한 슈퍼 트리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레이저 조명을 쏘고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듯 초현실적인 광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음악에 맞춰 환상적인 레이서 쇼를 선보이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슈퍼 트리 [사진 싱가포르 관광청]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사테이(꼬치) 먹어볼까

싱가포르의 호커센터 중 야경이 훌륭하기로 소문난 마칸수트라 클루턴스 베이[사진 싱가포르 관광청]

미식의 도시 싱가포르의 한 축을 담당하는 ‘호커센터’는 밤에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 보통 어스름이 깔리는 오후 4~5시쯤부터 열어 새벽 1~2시까지 영업하는 호커센터는 일종의 푸드 코드다. 노천에 의자와 테이블을 두고, 양 옆으로 로컬 식당들이 쭉 도열한 형태다. 바닷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포장마차 촌을 연상하면 된다. 
노천의 간이 테이블들을 얕잡아보지 말 것. 그 위에서 먹는 음식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행자들은 물론 현지인들도 찾는 제대로 된 싱가포르의 소울 푸드를 판다. 한국인 입맛에도 딱 맞는 치킨라이스, 고수풀만 없어도 굴전이라고 오해할만한 오이스터 오믈렛, 해산물이 들어간 볶음 국수인 호켄미 등 소박하면서도 묵직한 로컬 푸드들을 맛볼 수 있다. 싱가포르 전역에 이런 호커센터가 여러 곳 있는데, 그 중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환상적인 야경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마칸수트라 클루턴스 베이’다. 싱가포르 700곳의 호커 센터 맛집 가이드북인 『마칸수트라』가 선정한 최고의 호커 10곳이 모여 있는 곳이다. 싱가포르의 명물인 칠리크랩과 각종 꼬치(사테이) 요리가 유명하다. 하지만 이곳의 관전 포인트는 역시 마리나 베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야경이다. 유명한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과 건너편 해변에 자리 잡은 고층 빌딩숲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밤 풍경은 여느 전망 좋은 고층 레스토랑 못지 않다.

치킨 라이스와 오이스터 오믈렛 등 현지인들도 즐겨먹는 호커센터의 싱가포르 음식[사진 유지연 기자]

조명이 작품이 된다, 빛의 축제 아이라이트

싱가포르의 상징인 머라이언상이 색색의 조명 옷으로 갈아입었다[사진 싱가포르 관광청]

싱가포르의 야경이 딱 열 배 쯤 아름다워지는 기간이 있다. 바로 3월이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한 일명 빛의 축제인 ‘아이 라이트 마리나 베이’ 페스티벌 덕이다. 올해는 3월 3일부터 26일까지 열렸다. 빛을 활용한 역동적인 설치 작품들이 마리나 베이 일대와 지하철(MRT) 다운타운역 인근을 화려한 빛으로 물들였다.
단순한 조명 쇼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올해 테마인 ‘빛과 자연(Light and Nature)’라는 콘셉트로 총 20점의 빛 예술 작품을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해가 지고 싱가포르의 상징과도 같은 머라이언 상을 비롯해 마리나 베이 일대의 건물이 화려한 조명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축제의 시작이다. 밤이 완전히 깊어지면 거리 곳곳에는 어둠을 밝히는 신기한 설치 작품들이 존재감을 발한다. 밤에 피는 꽃을 조명으로 형상화한 ‘문 플라워’와 아트 사이언스 뮤지엄 벽면에 우주의 이미지를 투영한 ‘시크릿 갤럭시’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눈이 아프도록 환하고 화려한 대규모 조명이지만 에너지 낭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 행사의 테마 중 하나는 ‘지속 가능성’이다. 참가 아티스트들은 작품을 만들 때 재활용 재료를 적극 활용하고, 조명 역시 에너지 효율이 큰 LED 등을 활용한다.

조명을 활용한 설치 작품 중 하나인 '문 플라워(moon flower)' [사진 싱가포르 관광청]

클락키 불야성 배경으로 번지점프 하다

압도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지-맥스 리버스 번지 [사진 싱가포르 관광청]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클락키 주변을 거닐 때 항상 목격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두 세명의 사람들이 원통형 놀이 기구에 탄 채 하늘을 나는 장면 말이다. 농담이 아니다. 싱가포르 클락키의 명물인 번지 점프, ‘지-맥스 리버스 번지’ 얘기다. 번지점프는 허리나 발에 끈을 묶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는 다르다. 땅 위에서 출발해 시속 120km의 속도로 무려 60m 높이까지 솟아오른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일종의 ‘번지 스윙’이다. 높은 절벽도, 강변도 아닌 도심지에서 번지 점프가 무슨 재미냐 싶겠지만, 대낮같이 환한 클락키의 밤을 하늘에서 만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하늘을 나는 정신없는 와중에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 올리 만무한 이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덥고 끈적한 싱가포르의 밤을 화끈하게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싱가포르 최고의 번화가, 클락키 [사진 싱가포르 관광청]

밤에는 차랑 통제, 노천 술집 흥하는 홀랜드 빌리지
어디든 여행지에 들르면 현지인들이 가는 동네를 엿보고 싶어진다. 흔한 관광지가 아닌, 일상이 묻어있는 거리에 들러 잠시나마 현지인처럼 시간을 보내보는 망중한도 여행자의 특권일 것이다. 싱가포르의 중심가인 오차드 로드에서 서쪽 방향으로 자동차로 15분 정도 가면 나타나는 홀랜드 빌리지는 싱가포르의 ‘이태원’ 같은 곳이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비율이 높은 비교적 부유한 지역으로 멋스러운 카페와 노천 술집,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특히 어스름 밤기운이 깔리면 홀랜드 빌리지의 중심가인 ‘로르 망봉(Lor Mambong)’ 거리가 거대한 노천 술집으로 변한다. 차량을 통제해 수십 미터의 거리가 온통 테이블과 의자로 가득차기 때문이다. 거리 술집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들른 동네 주민과 일과 후 휴식을 취하러 온 직장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왈라왈라’·‘차차차’ 등 유명한 레스토랑&펍(pub)은 해가 다 지기도 전에 사람으로 꽉 찬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홀랜드 빌리지 밤 풍경. 차도 위에서 마시는 맥주가 각별하다 [사진 유지연 기자]

암호를 대시오, 이색 바(bar) 탐방
세련된 도시의 밤을 즐기는 방법으로 ‘바(bar)’만한 장소도 드물다. 동남아시아의 금융 중심지인 싱가포르에는 세련된 바가 많다. 영국 주류전문저널 ‘드링스 인터내셔널(Drinks International)’이 2000년부터 매년 ‘아시아 최고 바 톱 50 (Asia’s 50 Best Bars)’를 발표하는데, 2016년에는 톱 10위권에 싱가포르의 바가 4곳 포진해있을 정도다.
싱가포르에는 아찔한 전망을 자랑하는 루프톱 바 외에도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바도 많다. 그 중 ‘더 라이브러리’는 비밀주의를 표방하는 이색 바다. 이름에서도, 건물의 입구에서도 ‘바(bar)'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더 라이브러리는 케옹색 로드에 위치해있는데, 초행자라면 입구를 찾는 것조차 혼란스러울 수 있다. 바의 입구가 다른 상점 안에 있고 비밀의 문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라이브러리가 문을 연이래, 입구 쪽의 상점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처음에 작은 독립 서점이었다가 다음에는 주얼리 숍, 그 다음에는 이발소였다. 현재는 테일러 숍이 바의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애써 입구를 찾은 다음에도 난관이 있다. 입구쪽에 앉은 직원이 다짜고자 ’암호를 대시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당황할 것 없다. 재빨리 스마트폰을 열어 더 라이브러리의 공식 페이스북에서 암호를 확인하면 된다. ‘은밀함’을 무기로 내세운 바답게 내부는 어둑어둑한 분위기다. 젊은이들의 감성에 맞게 참신한 장식에 트렌디한 맛의 칵테일을 낸다.

테일로 숍으로 '위장'한 이색 바(bar), 더 라이브러리의 입구 [사진 싱가포르 관광청]

싱가포르=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