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오래된 보통의 아파트 주민들 심정이다. 물론 그들이 세입자건 소유자건 입장은 마찬가지다. 세입자라면 하루가 다르게 퍼지는 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거처를 옮겨야 하는지, 아니면 큰 빚을 내서라도 집을 장만해야 할 것인지를 가늠하지 못해 신경이 곤두선다. 소유자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풍문으로 떠도는 확인할 수 없는 재건축사업 논란에 시름이 깊어진다.
강남 등 일부 지역 제외한
노후 아파트 재건축 기대는
비용 많이 들어 요원한 현실
동네 재생으로 개념 바꿔야
이른바 기대감소 시대에 맞닥뜨린 것이다. 재건축은 물 건너갔으니 리모델링이라도 하자지만 분담금 때문에 선뜻 나설 형편이 못 된다. 아파트 재건축이 구조적 수명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수명 때문이고, 안전진단을 통해 붕괴 위험이 높을수록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냈고, 재건축이 막대한 잉여이익을 가져다주었던 경험의 달콤함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건설사나 주민이나 그 입장은 다르지 않다.
‘아파트 재건축’을 ‘단지 재생’으로 바꿔 불러보면 어떨까. 핵심은 ‘아파트’가 아니라 ‘단지’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하게도 오래 묵은 마음의 운영체제를 새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나아가 조합-건설사의 직접 매개 방식에서 벗어나 조합-건설사-지방정부의 삼각체제로 운영의 얼개를 새로 짜면 어떨까. 그렇다면 전혀 다른 생각과 방식이 떠오르지 않을까. 물론 쉽지 않다.
지방정부는 아파트단지 안의 일정 폭 이상의 단지 내 도로를 지방재정으로 구입한다. 사유도로를 도시계획도로로 편입한다는 말이다. 소유란 곧 책임을 동반하는 것이니 당연하게도 도로에 속한 가로등이며 벤치 등의 관리 책임을 공공이 담당한다. 나아가 부족한 주차장 확보사업을 수행하고, 그 일부를 아파트단지 주변의 주민들과 더불어 이용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아파트 주민들과 지역 주민 모두가 주차공간 부족 문제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지방재정으로 투입된 도로 매수 비용은 고스란히 불편한 아파트 설비 개선에 투입할 수 있다. 장기수선충당금으로는 감히 할 수 없었던 일이 실현된다. 자연스럽게 아파트단지와 외부를 구분했던 차단기는 사라지고 단지 주민과 지역 주민이 이웃이 되고 동네가 제 모습을 찾는다.
오래된 아파트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빈집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시행 중인 다세대·다가구 매입임대 사업 대상으로 삼아 재정지출을 통해 확보하는 즉시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한다. 공공임대주택과 민간소유주택이 스스럼없이 공존하게 되는 모양이니 사회혁신에 더없이 좋다. 정부로서는 공공임대주택의 비축 분량을 전국적으로 늘리게 되는 셈이니 따로 떼어내 집단화하면서 빚어졌던 공공임대주택 낙인화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방재정으로 확보한 임대아파트에 단지 경비원이나 청소원 등을 입주시킬 수 있는 제한적 특례를 강구한다면 그들은 이웃이 돼 동네를 스스로 관리하게 된다.
화합이니 통합이니 공감이니 연대니 하는 단어가 정치권에 국한된 구호가 아니라면 뇌리에 박힌 아파트 재건축이라는 운영체제를 일상공간과 이웃의 의제로 확대해 보면 어떨까. 재건축이 아닌 재생이 21세기의 새로운 운영체제다. ‘아파트 재건축’보다 ‘단지 재생’을 외치는 이유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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