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전인 7일 서울 관악구 낙성대역 주변에서 젊은 여성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에서 나오던 여성은 난데없이 뒤에서 나타난 남성에게 머리를 맞았다. 시민들 도움으로 경찰에 체포된 남성은 “나를 비웃는 것 같아 때렸다”고 말했다.
또 있다. 지난 4일 서울 시내 한 대학에서는 여학생들을 향해 아무 이유 없이 콜라를 뿌린 남학생이 경찰에 붙잡혔다. “여자가 공부는 안 하고 밖을 돌아다니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학교 게시판에는 “콜라가 아니라 염산이었으면 어찌할 뻔했나.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등의 성토가 이어졌다.
혐오 범죄에 대해 일찍이 경각심을 가졌던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의 대응 태도는 무디고 더디다. 지난해 말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성별·인종·종교 등에 의한 혐오 범죄를 따로 관리하는 ‘증오범죄통계법’을 발의했지만, 종교계를 중심으로 ‘동성애 조장법’이라는 반발이 빗발치자 철회했다. 최근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여성 혐오 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입장을 냈지만 여성 성희롱만 대상으로 삼을 계획이다.
미국은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여성에 대한 혐오 범죄까지 가중 처벌하는 ‘증오범죄예방법’, 혐오 범죄자를 따로 분류해 관리하는 ‘증오범죄통계법’이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미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 여성의 머리를 이유 없이 망치로 내려친 남성은 증오 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 혐오에 대한 얘기가 숱하게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서 받는 피해가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재영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