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로는 즉흥연주로 유명한 베네수엘라 태생의 피아니스트다. 그는 세계 어느 도시에서든 독주회를 열면 청중에게 즉석에서 멜로디를 받는다. 청중은 휴대전화 벨소리부터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주제, 생일축하 노래, 웨딩마치, 그 나라의 민속 음악까지 제안한다. 몬테로는 제안받은 주제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신기하기도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즉석에서 바로 만든 음악의 완성도다.
몬테로는 2009년 버락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연주한 피아니스트고, 1995년 쇼팽 국제 콩쿠르 3위 입상자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건 즉흥연주 때문이다.
4일 화상인터뷰에서 ‘뽀로로’ 주제 여섯 음을 들려줬다. 몬테로는 듣자마자 피아노로 한 번 쳐보고 3분 정도 즉흥연주를 했다. 낭만적인 선율과 화음으로 이어지는 ‘뽀로로’ 환상곡이었다. ‘뽀로로’ 주제는 들릴락말락 하다가, 큰 음악으로 발전했다가, 구성진 화음으로 끝났다.
이 피아니스트는 어떤 과정으로 즉흥연주를 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아무 것도 없는 데에서 음악이 뚝딱 나올까. 화상 인터뷰에서 물었다.
- 즉흥연주를 할 때 어떤 생각을 하나?
- “아무 생각도 안 한다. 그게 아주 신비하다. 계획도 물론 없다. 연주하면서 결정하는 것도 없다. 모차르트 협주곡의 카덴차를 만들어서 칠 때도 매번 다르게 친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 화음이나 리듬도 결정 안 하나?
- “전혀 안 한다. 말하자면 음악이 그냥 내 몸을 거쳐가는 것 같다. 나는 그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기만 한다. 내가 조정하는 것 같지 않다. 아, 다만 청중이 준 주제 멜로디는 계속해서 생각한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 유튜브에 보니 주제 멜로디를 듣고 나면 몇번 반복해서 쳐보면서 연습을 하는 것 같다.
- “연습은 아니다. 주제를 기억하고 느껴보는 것이다. 즉흥연주할 때는 생각을 안 하고 느낀다. 도미노 게임 같다. 하나를 밀면 그 다음이 그냥 넘어간다. 연쇄적이다. 도미노처럼 저 혼자 일어나는 일이다. 마법같다.”
- 그렇다면 무엇이 즉흥연주를 하게 만드는 것 같나? 신이 하는 일처럼 보인다.
- “여러 면으로 볼 수 있다. 내 남편은 음악인인데 과학에 관심이 많다. 한번은 내 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봐야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미국 존스 홉킨스 의대의 신경과학자에게 나를 데리고 갔다. 오랫동안 내 뇌를 연구했는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찾았다. 내가 베토벤ㆍ모차르트처럼 쓰여진 곡을 칠 때와는 전혀 다른 부분의 뇌를 쓰고 있다는 거다. 즉, 악보 연주를 할 때 쓰지 않는 부분으로 즉흥연주를 한다는 뜻이다. 나도 신비하다. 그래서 즉흥연주를 할 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다.”
- 타고났다고 할 수 있나.
- “음악적으로 그런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항상 즉흥연주를 했다. 3살 때부터 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둘 다 음악인이 아니었는데, 내가 음악을 만든다는 걸 이해했다. 그래서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을 했다. 약 150개 정도가 있다.”
- 어렸을 때도 지금처럼 본능적으로 즉흥연주를 했나.
- “그렇다. 언어의 이론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나에겐 즉흥연주가 그랬다. 아마 음악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 어릴 때의 즉흥연주도 지금 스타일과 비슷한가.
- “7세 때쯤 즉흥연주한 카세트 테이프를 최근에 들었는데 바르토크ㆍ쇼스타코비치처럼 20세기 작곡가들의 음악과 비슷했다. 그때는 그런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현대적이고, 지금보다 더 어두웠다. 그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다. 나도 아주 이상하게 생각한다.”
- 두 딸은 어떤가. 즉흥연주의 재능이 유전됐는지 궁금하다.
- “음악적이긴 하지만 조금 다르다. 14세인 둘째 딸은 노래를 하고 작곡 능력이 있지만 즉흥연주 능력과는 조금 다르다.”
- 즉흥연주를 하고나면 어떤 기분인가?
- “아주 행복하다. 즉흥연주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고, 매일 항상 하고 싶은 일이다. 한번은 친구들과 파티를 했는데 7시간동안 즉흥연주를 한 적도 있다.”
- 베토벤ㆍ모차르트 같은 곡을 칠 때와 기분이 다른가?
- “그때는 존경심이 든다. 물론 거기에 내 개인적인 인생과 생각을 불어넣으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베토벤ㆍ모차르트를 칠 때도 즉흥연주처럼 들린다는 말을 한다. 내가 단순히 음표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삶을 녹여넣으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 즉흥연주가 고전음악 해석에도 영향을 줄까?
- “즉흥연주를 하면 음악을 좀 더 열린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 작곡가가 어느 시대, 어떤 국가에 살았든 그와 연결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작품 해석이 좀 더 실제적이 될 수 있다. 즉흥연주를 하면 기존 작품에서도 악보와 음표 이상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 주제를 직접 만들어서 즉흥연주를 할 수도 있는데 청중에게 제안 받는 이유는?
- “청중이 공연의 한 파트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만든 주제로 즉흥연주를 하면 미리 준비했다고 의심하는 청중도 있다.(웃음) 또 대부분의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청중이 말할 권리가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공연에서는 청중이 노래도 하고 멜로디를 제안한다. 그게 아주 좋다.”
몬테로는 이달 21일 오후 8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첫 내한 독주회를 연다. 전반부에는 브람스ㆍ리스트를 연주하고 후반부에는 즉흥연주를 한다. 역시나 청중에게 다양한 멜로디를 제안받을 예정이다. 음악의 찬란한 역사을 불러낼 수 있는 흥미로운 멜로디들을 청중이 준비할 차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