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취재일기] 교육현장의 미세먼지 둔감증

중앙일보

입력 2017.04.06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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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지난 3일 서울 지역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평소의 두 배까지 치솟았다. 주의보 발령 수준까지는 아니었어도 예보등급으로 따지면 ‘나쁨’ 수준은 족히 됐다. 하지만 이날 서울 도심의 한 여자고교에서는 1학년생들이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 나와 평소처럼 달리기를 했다. 사실상 미세먼지를 무방비로 들이마신 셈이다. 환경부 권고에 따르면 ‘나쁨’ 단계에서는 노약자는 물론 일반인도 오랜 시간 혹은 무리한 실외활동을 자제해야 한다. 특히 감기 환자는 실외활동 자체를 피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1급 발암물질이고, 어린이가 노출될 경우에는 성인보다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선 학교들의 미세먼지 대응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교육부에서 각 학교에 오염도가 ‘나쁨’ 이상일 때에는 실외활동을 자제하고 마스크 착용 등을 교육하도록 하는 대응매뉴얼을 보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된 데에는 해당 시·도의 초·중등교육을 책임지는 교육청들의 잘못도 크다.

미세먼지 나쁨 단계이던 지난달 27일 서울의 모 학교 학생들이 체육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임현동 기자]

 
녹색연합이 5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국에서 지난해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 미세먼지 주의보가 32차례 발령됐다. 이 중 시·도 교육청이 일선 학교와 유치원에 실외 수업 금지나 실외 수업 자제 등을 요구하지 않은 사례가 일곱 번이나 됐다. 비율로는 22%로 다섯 번 중 한 번은 아무 대책이 없었다는 얘기다. 교육청들은 “도내 일부 지역에만 주의보가 발령됐기 때문”이라거나 “미세먼지 담당자가 확정되기 전이었다”고 해명하지만 쉽게 납득은 안 된다. 학부모들의 걱정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초등 4학년 아이를 둔 윤혜진(42·서울 서초동)씨는 “미세먼지가 많은 날엔 마스크를 씌워 학교에 보내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야외활동도 그대로 하고, 무신경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에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체육수업은 해야겠는데 체육관은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경우도 많다. 게다가 미세먼지 오염이 이들의 책임도 아니긴 하니 말이다. 하지만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학생들 건강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피해는 크게 줄일 수 있다. 경북교육청의 사례가 눈에 띄는 이유다. 경북교육청에서는 지역 내 20여 학교를 ‘미세먼지 선도학교’로 지정해 별도의 미세먼지 측정 시설까지 갖추도록 했다. 또 여기서 측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자체가 발령한 미세먼지 주의보 횟수보다 더 자주 일선학교에 대응조치를 주문했다.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 모두 아이들에게 지식 교육 못지않게 건강한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깊이 새겼으면 싶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